[김성호 세상보기]필수선택 IMF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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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찍이 한국에는 정치학이 필요없다고 했다 (한국 정치가 언제 교과서대로 된 적이 있나) .얼마전부터는 철학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실망이 크다고 그 전공과목까지 미워할 게 뭐람) .최근엔 경제학도 다 소용없다는 말이 나돈다 (전혀 무예측의 상태에서 최단기간 안에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배경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당연하지) . 그런데 요즘 정통 경제학의 국제판 실사구시 (實事求是) 적 응용학문이라는 'IMF경제학' 만큼은 꼭 배워 둬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바로 엊그제만 해도 대통령과 대통령당선자가 모여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

맹세 1. "오늘의 경제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 (IMF) 과 충실히 협력하고 국제 경제기준에 맞는 개방을 서둘러 실시한다."

…맹세 5. "우리 국민들이 IMF시대에 건전한 태도로 협력해준데 대해 감사드린다."

이만하면 IMF경제학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을 알만하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IMF경제학이 현실에 맞지 않는 틀린 학문이란 비판이 사방 도처에서 나오고 있잖은가.

우리가 건전한 태도로 지지하고 꿈속에서도 협력하는 이 학문이 사실은 우리를 더욱 궁지에 몰고 있다는 지적이 이 비판의 주된 내용이다.

이런 비판을 제기하는 쪽은 그 면면만 봐도 성화 (聲華)가 짜르르하다.

세계 최고 학부 (學府) 라는 하버드대학, 세계 최고 은행이라는 세계은행 (IBRD) , 세계 최고 언론이라는 뉴욕 타임스.르 몽드 등등. (IMF 캉드쉬 총재의 골을 지르려고 이런 명단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하도 어려워 하소연 좀 하려는 것이다.

괜히 토라져서 한국에 줄 돈을 거둬 가지 마시길. ) 각설하고, IMF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IMF 구제금융은 외환위기에 빠진 당사국이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을 통해 이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IMF는 한국의 금융위기를 이용, 한국 경제를 미국의 이미지에 맞게 다시 만들고 있다."

"한국은 남미와 다른 데도 IMF는 똑같은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고전적 IMF경제학은 아시아에서는 실패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봐라. IMF 지원이 벌써 몇달째 계속되고 있는데도 이들 나라는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잖은가."

"사실 맨처음 IMF와 맺은 양해각서를 봤을 때 모든 수단을 다 꽁꽁 묶어 놓고 (단지 허리를 조르는 수단만 터넣고) 위기를 극복하라고 하니 앞길이 캄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 " "긴축 위주의 처방이 현실과 어긋난다는 조짐이 보이자 이른바 거시지표 운용목표를 수정하기에 이르렀지. 성장률을 낮추는 대신 통화증가를 늘리기로 한 것은 잘 된 일이야. 우선 금융 경색에 숨통을 터주고 다음 물가를 수속 (收束) 해야지. " "그런데 한국의 경제지표가 당초 예상과 빗나가는데 대해 한국이 개혁을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IMF가 성내지 않을까. 그 사람들 비위를 건드릴까봐 한국인들 간이 콩알만해졌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돈은 없다고 어떻게 겁을 줬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해. 재협상을 거론한 대선 후보가 얼마나 혼쭐이 났던지 즉각 추가협상이라고 말을 바꿀 정도였잖아. " "IMF경제학이 틀린 학문이란 지적도 있고 하니 추가협의라는 이름의 재협상을 벌여 보는 것이 어떨까. " "산소 호흡기를 뗄 배짱이 있어? 국민적 필수선택과목을 너무 얕잡아 보지 말라우. "

김성호<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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