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군사당국 간 합의 제대로 이행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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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의 가시적 성과로 평가됐던 양측 해군함정 간 '핫라인'개설 등의 합의 사항들이 북측의 무성의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14일 첫 교신 이후 30일까지 우리 해군함정의 17차례에 걸친 호출에 북측이 응답한 것은 고작 세 차례였다. 지난 6월 말까지 철거키로 했던 군사분계선 서부전선 지역 내 선전수단 제거작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북측이 '우리 장군 제일'등이 새겨진 돌글씨 등을 제거하지 않고 있어 우리 측도 철거작업을 유보하고 있다.

불과 보름여 전에 채택한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측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속내가 다른 데 있었던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물론 북측이 앞으로도 합의 내용들을 계속 무시할 것인지 판단하기는 시기상조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북측의 태도에는 합의내용을 성실하게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엿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해군함정 간 교신이 사실상 불통인 것은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북측이 의도적으로 받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동안 세 차례 이뤄진 교신을 통해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마땅하나,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글씨'제거에 합의했다가 뒤늦게 이를 번복하고 나선 것도 우리로선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일단 미끼를 던져 전광판 등 남측의 선전물들을 제거케 하고 자신들은 살짝 빠지는 특유의 전술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 때문에 남측의 식량 지원 결정을 끌어내기 위한 눈가림 합의가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북측이 '이제 얻을 것은 얻었다'는 식으로 합의내용 이행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면 이는 남북 간 불신의 골만 깊게 할 것이다. 북한이 진정 경제회복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대외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남북 간 기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일이다. 북한은 오늘 열리는 남북 장성급 회담 실무 수석대표 접촉에서부터 신뢰쌓기에 나서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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