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 직접 발언하는 형식 “균형잡힌 역사 보여주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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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호철씨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존 인물들의 가상 발언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 보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체험, 통일 문제 등에 평생 매달려온 원로 소설가 이호철(77)씨가 장편소설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중앙북스)을 최근 펴냈다. 2007년부터 2008년에 걸쳐 계간지 ‘문학의 문학’에 다섯 차례 나눠 실렸던 것을 묶은 것이다.

이호철씨는 “이번 장편소설은 ‘직설체 소설 형식’을 도입해 쓴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씨가 1964년 단편소설 ‘제1기 졸업생’, 92년 장편소설 『개화와 척사』 등에서 이미 선보인 적이 있는 직설체 소설 형식은 역사적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직접 발언토록 하는 방식이다.

등장인물들의 발언은 ‘직접 인용’된다. 가령 연작 형태의 『별들 너머…』 중 한 편인 ‘구름 흐르는 소리’는 이승만·김구·윤치영·임병직·변영로 등의 발언을 통해 혼란스럽던 해방 직후 남한의 정치판 풍경을 전한다. 역시 해방 직후 북한의 정세를 그린 ‘천둥 흐르는 소리’에는 조만식과 북한 국가부주석을 지낸 공산주의자 최용건의 대화가 등장한다.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을 파고든 ‘폭우 퍼붓는 소리’에서 이씨는 한 발 더 나간다. 아예 77년 공개된 미 국무성 비밀자료 등을 요약해 소개한다.

때문에 『별들 너머…』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상당한 분량의 분단·전쟁 관련 자료를 소설가의 글솜씨로 풀어낸 입체적인 역사 교과서에 가깝다. ‘구름 흐르는 소리’의 중심 인물은 이승만이다. 소설 속 이승만의 발언 시점은 2009년. 65년 타계 후 어떤 별인가로 떠나온 이승만은 자신이 4·19의 원흉, 독재자였다는 점을 시인한다. 하지만 “백범의 ‘단정 반대’ 주장은 순진한 주장이었다”며 자신이 냉철한 지식인, 자신 때문에 대한민국이 존속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편다.

이씨는 또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의 발언을 통해, 일본 도쿄에서 맥아더 장군을 만나는 자리에 서울의 하지 중장을 불러 기선을 제압한 이승만의 정치 술수도 소개한다. 물론 이들 등장인물의 발언들은 이씨가 취재 자료를 바탕으로 꾸며낸 ‘가상 발언’이다.

이씨는 “이승만을 실감나게 되살리기 위해 그의 전기 대여섯 권을 독파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이승만이 별 어거지를 다 써가며 권력에 연연했던 이유가 보이더라”고 했다. “흉악한 독재자, 스탈린의 공산주의를 막으려다보니 더 독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요즘 역사 교과서는 극좌나 극우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교조는 아직도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가 “『별들 너머…』에는 균형잡힌 역사 의식이 담겨 있다.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신준봉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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