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축구로 기세 오른 남유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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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돈 많은 북부 유럽에 늘 눌려 왔던 남부 유럽 국가들이 모처럼 기세를 올렸다. 남유럽의 인사들이 유럽연합(EU) 내 핵심 요직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먼저 EU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집행위원장 자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로마노 프로디 현 집행위원장에 이어 오는 11월부터 마누엘 바로수 포르투갈 총리가 맡는다.

지난달 확정된 EU 헌법에 따라 신설될 EU 외무장관에는 스페인 출신의 하비에르 솔라나 EU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지명됐다. 11월 20일 열리는 역사적인 EU 헌법 서명식도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열린다. 1957년 유럽공동체(EC)를 창출했던 로마조약이 서명된 장소에서 EU 헌법 서명식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유럽의 약진이 남유럽 혼자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집행위원장 자리다. 프랑스.독일 등 이라크 전쟁 반대 국가들은 기 베르호프스타트 벨기에 총리를 지지했다.

이들은 EU의 위상 강화를 내세웠다. 반면 영국.이탈리아.폴란드 등 이라크전에 참가한 친미 국가들은 영국의 크리스토퍼 패튼 전 홍콩 총독을 지지했다.

두 진영은 팽팽히 맞섰다. 이때 절충안으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수였다. 회원국 간의 이견을 조정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결국 양 진영은 이 절충안에 합의했다. 남유럽으로서는 '어부지리'를 얻어낸 셈이다.

올해 국제 스포츠 잔치가 모두 남유럽에서 열린다는 점도 남유럽의 위상을 한껏 높여준 호재다.

그리스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막을 한달 앞두고 있고, 포르투갈은 '유럽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200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를 치러냈다. 이 대회에 출전한 남유럽 팀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영국.독일.네덜란드 등 전통의 북유럽 강호들은 모두 몰락했다.

결승에 오른 것은 FIFA 랭킹 35위에 불과한 그리스와 22위인 포르투갈이다. 이런 추세라면 남유럽 국가가 초대 EU 대통령 자리까지 거머쥘 공산도 있다.

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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