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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언론, 날개 아닌 몸통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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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80년대에 반체제 지식인으로 혹은 시대 양심의 대변자로 회자한 언론학자 이영희 교수는 이른바 '날개론'을 편 바 있다. "우리나라에 우익 언론만 있고 좌익 언론은 없다. 좌익 언론이 튼튼하게 육성돼야 민주주의라는 새는 균형있게 날 수 있다." 이런 주장이 그 요지였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새의 날개는 균형이 잡힌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 새는 오른쪽에는 메이저 신문 몇 개가 거대한 날개를 이루고 있지만, 왼쪽엔 왜소하기 짝이 없는 '한겨레'라는 하나의 날개를 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왼쪽 날개를 더 키우는 게 시대적 과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왼쪽 날개를 보강하는 일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급히 보완해야 할 것은 날개가 아니라 몸통이다. 날개는 원심력을 창출한다. 끊임없이 외부로 내뻗어야 그 존재가치가 실현된다. 그런 날개를 하나의 구심에 붙들어 두는 것이 몸통이다. 몸통이 없으면 날개는 떨어져 나가고 몸은 찢긴다. 그래서 균형있게, 힘차게 날기 위해서는 날개보다 먼저 든든한 몸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새는 날개만 있고 몸통은 없거나 아니면 부실하다.

이미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고만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은 날개 역할을 할 자격이 없다. 주류 신문은 몸통이 돼야지 날개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 신문이 몸통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어느 신문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는가? 주류 신문사 기자 가운데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기자는 몸통 언론인이 아니다. 날개이거나 깃털일 뿐이다.

주류 신문이 오른쪽 날개를 맡고 있기 때문에 주요 방송매체가 왼쪽 날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의견에도 공감할 수 없다. KBS도 MBC도 SBS도 날개가 돼서는 안 된다. 이들 방송매체가 조.중.동과 어울려 든든한 몸통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무게 중심이 바로 잡힌 공론이 나올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거쳐 국격(國格)을 높여가야 한다.

'밀턴에서 맥루한까지'라는 명저를 낸 허버트 알철에 따르면 미국 언론이 가장 즐겨 조롱하는 것이 정치권력이다. 이런 경향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더하다. 미국 언론인들은 정당한 사유만 있다면 정치권력쯤이야 한순간에 뒤엎어버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 언론인의 이런 태도를 오만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국 언론인의 인식의 기저에 깔려 있는 철학의 깊이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알철이 지적했듯이 미국 언론인의 직업 이데올로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언론인이 사회의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는 파수견(把守犬)이라는 긍지다. 그들은 중추이기 때문에 어느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치우침이 없으며 파수견이기 때문에 공정한 잣대로 모든 정파를 감시한다. 제3자 또는 초월자로서 비판하고 통합하는 일을 소명으로 아는 언론인들의 행동철학 덕분에 미국에서 언론의 공개시장은 좀처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다.

사실 미국 언론인의 그런 정신은 우리나라의 많은 언론사가 사시나 지침으로 표방하고 있다. 불편부당(不偏不黨)이라는 사자성어가 그것이다. 편당이라는 단어를 겹으로 부정함으로써 독립성을 강조한 이 말이야말로 어느 선진국의 독립성 개념보다 강력하다. 그러나 그 성어가 벽에 붙어 있는 한 구슬일 따름이다. 벽에서 내려와 지면을 지배할 때 그것은 비로소 보배가 된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정보학

◇약력=고려대 졸, 신문방송학 석.박사,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저서:'한국언론사'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