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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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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리 사회가 탈크에 함유된 석면으로 인해 또다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멜라민 함유 식품 등 먹거리에 이어 베이비파우더, 화장품과 함께 경구용 의약품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다. 생명을 담보하는 약마저도 안심하고 복용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은 국민을 분노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약의 생명은 신뢰이므로 정확한 사실에 따라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다시 국민들이 이런 문제로 불안감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전문가의 과학적 판단이 존중되어야 한다. 선진국들은 식품·의약품·화장품 등의 인체 안전 여부를 순전히 과학적 근거에 준하여 평가, 판단하고 있다. 의약품의 탈크, 또 그 안에 들어 있는 석면은 극히 적은 양인 데다 소화관을 통해서는 흡수되기 어렵다. 그래서 인체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과학적 정보다. 그러나 석면에 대해 ‘1급 발암물질’이라는 공포감이 조성된 후 과학적 정보는 소용이 없는 형편이다. 물질의 독성과 노출되는 양을 고려해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전문가의 견해가 일반 대중에게 먼저 알려지도록 하지 않고는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둘째, 정부 정책의 신뢰감을 조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이번에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인체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국민 정서’ 때문에 의약품을 회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국가정책이 ‘과학적 사실’보다는 ‘국민의 정서’에 따르게 된 것이다. 사회의 정책은 어느 순간 증폭되는 여론에 휘둘리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과학자는 물론이거니와 정부와 일반 국민 등 사회 각 분야가 참여하는 체계적인 정보 공유와 소통, 나라의 사회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당사자 간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절차가 미흡해 당사자 간 오해와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일이 허다하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 어느 정도의 양까지를 허용하고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할까를 결정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정부·산업계, 그리고 국민 상호 간에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제약산업을 일류 수준으로 육성해야 한다. 저약가 정책에 매달려 싼 원료에 의존하는 국내 시장에서 빚어지는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는 기술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자국에서 약을 생산하는 많지 않은 국가 중의 하나다. 이번 파동으로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국민 보건 증진과 생명권 수호에 기여해온 제약업계의 노력이 송두리째 부인되고 제약산업이 위축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세계 수준의 연구력과 기술경쟁력을 갖추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김영중 서울대 교수·약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