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성공한 독립영화 비결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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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올 상반기 한국 영화계 최고의 히트상품 ‘워낭소리’에 이어 또 다른 독립영화 ‘똥파리’도 터졌다. 양익준(34) 감독이 살던 전셋집 보증금을 보태 만든 2억5000만원 저예산 영화 ‘똥파리’는 개봉 8일째인 23일 현재 약 5만 명이 관람했다. 2만 명을 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나흘. 290만 관객을 동원한 ‘워낭소리’가 2만 명을 돌파하는 데 2주가 걸린 데 비하면 엄청난 속력이다. 도빌·라스팔마스 등 9개 해외 영화제에서의 기록적인 수상 행진, ‘물건 하나 나왔다’며 흥분한 관객들의 입소문 덕에 개봉 첫 주 상영관을 58개나 확보할 수 있었던 덕이다. 개봉 당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관객 수가 늘고 있는 추세여서 이번 주말을 지나면 독립영화로서는 ‘꿈의 숫자’인 10만 명 돌파가 확실시된다. 지금까지 10만 명을 넘은 우리 독립영화는 ‘워낭소리’ ‘후회하지 않아’ ‘우리 학교(공동체 상영 포함)’등 세 편뿐이다.

올해 들어 독립영화의 약진이 눈부시다. ‘워낭소리’ 돌풍에 가리긴 했지만 노영석(33) 감독의 ‘낮술’은 개봉 두 달여가 된 최근까지 2만7000여 명이나 봤다. 독립영화는 보통 1만 명이 들면 대성공으로 친다. 독립영화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주된 이유를 전문가들은 기존 상업영화와 ‘다름’에서 찾고 있다. ‘새롭다’는 점에 관객들이 열광한다는 것이다.

‘가족보다 더 살가운 인생 동반자’로 소를 설정, 신선한 충격을 준 다큐 ‘워낭소리’는 ‘독립영화는 난해한 실험성과 정치적 메시지 과잉 탓에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신호탄이었다.

‘낮술’은 한 남자의 강원도 여행이라는 평범한 소재로도 얼마든지 관객을 쥐었다 놨다 하는 개성 강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똥파리’는 대물림되는 가정폭력의 끔찍함과 방황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거침없이 담아내 소위 ‘88만원 세대’의 감성을 건드렸다.

‘똥파리’ ‘낮술’의 배급·마케팅을 맡은 ‘영화사 진진’ 김난숙 대표는 “소재가 새롭거나, 기존의 소재라도 바라보는 시각이 새롭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면 관객은 영화의 ‘출신성분’이 상업영화이건 독립영화이건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들 영화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독립영화의 약진은 뒤집으면 최근 2~3년간 침체에 빠진 충무로 상업영화가 반성해야 할 대목과 정확히 일치한다. 김영진(영화뮤지컬학부) 명지대 교수는 “지금 대중은 극심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주류 상업영화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자기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제대로 발언하는 ‘똥파리’ 같은 알차고 다부진 작품들이 뻔하고 재미없는 기존 상업영화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라며 “충무로 제작자들과 투자자들은 창의성과 경쟁력 있는 콘텐트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똥파리’가 한국독립영화협회의 기획전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에서 상영됐을 때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은 관람 후 “충무로 감독들이 반성하고 긴장해야 할 영화가 나타났다”고 평한 바 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독립영화의 도약은 맥 못 추고 있는 상업영화의 ‘견제구’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제 충무로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차례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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