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난타의 연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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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며칠 전에는 시골 절을 찾아갔다. 좁다란 길이 참 고왔다. 연둣빛 의상으로 갈아입은 봄 산을 보면서 일주문에 들어섰을 때 내 마음에도 신록의 산빛·산내음이 번져 세속의 문답과 시비를 잠깐 잊는 듯했다. 많은 사람이 환한 미소처럼 내건 연등들 속으로 나는 깊숙이 들어섰다. 꽃 떨어진 자리같이 허전했던 마음 한구석도 어느덧 맑고 산뜻해졌다.

연등을 만들어 내건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시대에는 좀 특이하게도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 집집이 장대를 세우고 등을 달아 하늘 높이 올렸다. 풍요와 다산을 바라는 마음으로 석류등이나 수박등을 달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거북등이나 학등을 달았다. 특히 종로 일대로 쏟아져 나온 연등 행렬은 더할 나위 없이 장관이어서 사람들은 다투듯이 남산의 북서쪽 봉우리 잠두봉에 올랐고, 그곳에서 연등 불빛을 바라보는 것을 한 해의 으뜸 구경거리로 삼았다. 강희맹은 “하늘 위에 항성이 일천 집에 떨어진 듯 / 한밤중 가는 곳마다 붉은 노을 감도누나”라고 읊어 종로 일대에서 펼쳐지는 연등축제 풍광에 크게 감탄했다.

불교에서 이렇게 연등을 만들어 내걸고, 또 부처님께 등을 공양 올리는 데에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스스로 없애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량한 자비를 베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불교경전 ‘현우경’에는 난타의 연등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난타는 아주 가난한 여인이었다. 국왕이나 많은 사람이 붓다와 그의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난타는 몹시 부러워했고, 공양을 올리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난타는 작은 공양이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일을 했다.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기름을 사 가까스로 등불을 밝혔다.

등불을 밝혀 붓다에게 올리면서 난타는 간절하게 서원을 세웠다. 지금 비록 가난해서 허름한 등불 하나만을 공양할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등불은 자신의 큰 재산을 바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마음까지도 모두 바치는 것이니 부디 등을 공양 올리는 인연 공덕으로 내생에 지혜광명을 얻고 또 일체 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없애게 해 달라는 서원이었다.

밤이 지나고 먼동이 트기 시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등불은 꺼졌지만 난타의 등불은 유독 꺼지지 않았다. 붓다는 난타의 등불을 보면서 “사해의 바닷물을 길어다 붓거나 크나큰 태풍을 몰아온다 해도 난타의 등불을 끌 수는 없다”고 말하며 난타는 장차 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등을 바치는 진실한 마음과 일체 중생을 먼저 구원하겠다는 그 숭고한 이타심 때문에 난타의 등불은 가장 오래 가장 환한 빛으로 타올랐던 것이다.

연등 아래서 나는 나의 작은 바람을 생각했다. 이성선 시인은 시 ‘티베트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 새처럼 가난하고 / 나비처럼 신성할 것 // 잎 떨어진 나무에 귀를 대는 조각달처럼 / 사랑으로 침묵할 것 / 그렇게 서로를 들을 것.” 나는 이 시를 나의 기도로 삼아 환한 연등 아래서 읊조렸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