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베이징 컨센서스’ 정착될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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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유럽을 순방했다. 그의 취임 후 첫 북미 밖 외출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워싱턴 컨센서스’, 즉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이 한물갔다는 사실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할 것이냐다.

중국은 ‘소프트 파워’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그러나 경제와 거버넌스 문제에 관한 한 중국식 접근법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오바마 정부도 경제 안정을 위해 지난 20여 년간 중국이 해왔던 것처럼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다. 중국식 경제 모델에서 정부는 엄격한 금융통제, 에너지 연구개발 지도, 선택적인 수입 규제 등을 통해 국가 경제를 주도한다. 그런데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도 이런 수단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징 컨센서스’, 즉 중국식 경제 모델은 경제 발전을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 한다. 다만 국가 안정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성장을 추구한다. 이 같은 외교적·정치적 현실주의는 부시 정권 시절의 신보수주의 정책을 뒤집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제한된 자원을 보다 경제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먹고사는 현실적 문제를 우선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탓에 미국은 자유무역의 옹호자로서 도덕적 근거를 잃어버렸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자신들의 경제·정치 원칙을 다른 나라들에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서방세계는 더 이상 그런 조건을 강제할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미국 한 나라가 주도하던 국제질서는 다수의 지역 강국이 경쟁하는 체제로 바뀌고 있다. 그들은 경제 성장과 불안정성 제거를 위해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는 국제사회 안정이란 짐을 미국에 떠맡기는 대신 각자 자신의 세력권 내에서 더 큰 역할을 맡을 것이다. 캅카스는 러시아의 책임이고, 미얀마 문제는 중국·인도가 풀어야 한다.

미국의 정책 변화는 필연적으로 서방 자유주의의 축을 약화시킬 것이다. 미국은 융통성과 포용력, 리더십을 갖고 있지만 유럽은 그렇지 못하다. 유럽-미국의 파트너십조차 갈수록 약화될 것이다. 미국은 현실주의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위기에 좀 더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소프트 파워 일부를 잃게 될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영향력은 도덕적 존경이 아니라 경제 회생과 새로운 동맹의 성공 여부에 좌우될 것이다.

하지만 ‘베이징 컨센서스’도 안정을 보장하진 못한다. 강대국 간의 협력은 깨지기 쉽다. 엄청난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미국의 ‘U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도 두고봐야 한다. 만약 중요한 경제의 축이 위험해질 경우 국수주의가 실용주의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지역 강국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오래된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행보도 관건이다. 만약 중국이 성공적으로 경제위기를 탈출해 계속 힘을 키워간다면 중국과의 관계를 ‘윈-윈(win-win)’으로 보던 시각은 ‘제로 섬(zero sum)’이란 시각으로 바뀔 것이다.

조너선 홀슬랙 브뤼셀 현대중국학 연구소장
정리=김한별 기자 ⓒ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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