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권장 도서를 다시 생각하길 ‘권장’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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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든 숲 속엔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난 나그네 몸으로 두 길을 다 가볼 수 없어/(중략) 그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중략)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이처럼 바꿔 놓았습니다”라고’.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5~1963)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입니다. 인생의 중턱을 넘어선 이들은 후반부에, 이제 막 청춘을 꽃피운 젊은이들은 전반부에 가슴이 설레지 않습니까. 요즘 어렵다는 출판 시장에서 그래도 잘 팔리는 어린이책들을 보면서 떠올린 시입니다. 제가 지나온 길, 그리고 저의 아이들이 걸어갈 길을 생각하면 이 시에는 많은 진실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국내에는 어린이의 독서를 지도하는 모임이 많습니다. 모임이니만큼 다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겠지요. 그리고 한결같이 권장도서를 발표합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는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문제는 모임마다 권장도서의 성격이 뚜렷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감이 없지 않지요. 그렇지 않아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혹시 독서를 지도하는 모임이 오히려 어린이들이 누릴 선택의 폭을 좁히지는 않는지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인 13명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글을 모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이가 대학 재학중에 학자의 길로 방향을 굳혔더군요. 이 노벨상 수상자들의 어린 시절과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가능한 한 많은 길을 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명진 기자 Book Review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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