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친구가 많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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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의사를 찾고 건강 관련 서적을 읽고 운동을 하고 식사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노화를 더디게 하고 수명을 늘려주며 질병과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비법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바로 친구다. 흉금을 터놓고 말벗이 되면서 지낼 수 있는 친구가 바로 의사다.

호주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해온 한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많은 노인들은 친구가 없거나 적은 노인에 비해 10년 후 사망률이 22% 감소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오래 산다는 얘기다. 지난해 하버드 의대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많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대뇌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각지에 뿔뿔히 흩어져 살면서도 40년간 친구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 아이오와 주 출신의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 11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돼 화제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나서도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11명 가운데 2명은 최근에 유방암에 걸렸다. 미네소타 주 노스필드에 사는 고교 교사 켈리 즈와거맨은 2007년 9월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만나고 함께 지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하지만 켈리는 그동안 연락을 하고 지내던 친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친구들은 그에게 전화와 이메일로 자주 안부를 물었고 아낌 없는 사랑을 보냈다. 암 치료 때문에 식사를 할 때마다 목구멍이 아프고 따갑게 되자 친구 중 한 명이 스무디 메이커를 보내왔다. 조리법을 자세히 적은 쪽지와 함께.

백혈병으로 딸을 잃은 또 다른 친구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뜨개질로 짠 털모자를 보내왔다. 다른 친구는 잘 때 땀을 많이 흘려도 흡수와 통풍이 잘 되는 특수한 섬유로 만든 잠옷을 보내왔다.

켈리는 자신의 병에 대해 의사와 상담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얘기하는 편이 훨씬 편안하다고 말한다. 여자들끼리 매우 깊은 얘기까지 스스럼 없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켈리는 친구들이 암 치료와 극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2006년 간호사 3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친한 친구가 없는 여성은 10명 이상의 친구가 있는 여성에 비해 유방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와 만나 얘기를 나누는 빈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독신과 친구 관계를 연구해온 샌터 바버라 캘리포니아 주립대 심리학과 객원 교수 벨라 드파울로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배우자나 가족보다 친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 친구가 약을 사다준다든지 병원에 데려간다든지 하는 잔심부름을 해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친구의 역할은 물리적 도움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실제로 멀리 사는 친구도 큰 도움이 된다. 주변에 병으로 고생하는 친지들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정보도 요긴하게 쓰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심리적 효과가 크다. 친구 관계가 끈끈한 사람은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보고도 나와있다. 친구가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금방 풀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강화된다.

지난해 버지니아 주립대에서 3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친구와 함께 등산하는 사람은 산의 경사가 가파르지 않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과 같은 질병도 넘어야 할 산이라면 친구와 함께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공대 노인학 연구 센터 캐런 로베르토 소장은 “친구 관계가 돈독한 사람은 금방이라도 나타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으로 살아간다”며 “어릴 때 친구를 잘 사귀어 놓으면 평생 도움을 주고 받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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