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법정관리기업 '사냥'…重機대여업자,상아제약 최대주주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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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 경영권 인수를 겨냥해 법정관리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된 경우가 등장, 화제가 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에서 중기 (重機) 대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유청영 (柳靑永.64) 씨는 최근 한보그룹 계열 상아제약 주식을 증시에서 꾸준히 사들여 지분율 19.37% (70만여주) 의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상아제약은 이에따라 이달초 증시에 "柳씨가 기존의 대주주인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 (鄭泰守) 씨 부자 (8.21%) 를 제치고 1대 주주가 됐다" 며 대주주 지분변경 공시를 냈다.

지금까지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투자는 회사 정상화에 실패해 법정관리가 폐지될 경우 주식이 휴지조각으로 변하는데다 법정관리 기간도 길면 10여년 이상 가는 경우도 종종 있어 위험투자로 생각돼온 게 일반적이었다.

증권업계는 "법정관리기업이 법원이나 채권단 등에 의해 3자인수되면서 경영권이 바뀐 적은 종종 있었으나 증시에서의 주식 매집으로 대주주가 바뀐 적은 처음" 이라며 향후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한편 柳씨는 "상아제약이 장래성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경영에 참가할 목적으로 주식을 취득한 것" 이라며 "앞으로도 장내외 거래를 통해 보유주식을 꾸준히 늘려나가겠다" 고 말했다.

柳씨의 정확한 주식 인수비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올들어 한때 최고 1만4천5백원까지 올라갔던 상아제약 주가가 법정관리 이후엔 급락해 현재 2천원선에 머무르고 있어 柳씨는 평상시 주식 인수비용보다 훨씬 싸게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柳씨의 경영권 인수 가능성에 대해 서울지법 관계자는 "법정관리기간 동안은 주식 취득으로 인해 대주주가 됐다 해도 법원이나 채권단의 동의 없이는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법정관리가 종결됐을 때 기존 대주주들과의 연관관계가 없을 경우 경영권 인수가 법적으로 가능하다" 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른 부도 여파로 회생 가능성이 큰 건실한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경우도 발생함에 따라 이같은 투자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며 "저주가 (低株價) 시대의 도래가 이같은 위험기업 투자를 더 부추길 가능성도 크다" 고 전망했다.

69년 설립 이후 93년 7월 한보그룹으로 인수된 상아제약은 외용 소염진통제.입술연고제 등을 생산해온 자본금 1백19억원 (95년말 기준) 의 제약업체로 올 1월 한보그룹 부도 이후 2월부터 회사 정리절차 (법정관리)가 진행되고 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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