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에 책임지는 '野大' 돼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나라당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했으나 국회에서는 과반수를 유지하고 있는 다수당이다.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은 됐으나 입법권은 아직도 한나라당 수중에 있다.

국가의 모든 활동이 의회를 통한 입법과 예산 뒷받침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볼 때 국정운영에서 한나라당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소극적으로는 대통령의 운신을 제한하고 적극적으로는 독자적 입법을 통해 정책을 구현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다수 야당일 뿐만 아니라 30여년간 집권경험을 해 본 신 (新) 야당이다.

과거 국정경험이 없었던 만년야당들의 무조건 반대 등의 행태에서 벗어나 나라전체의 사정을 살펴 합리적이며 국익을 고려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이 있다.

따라서 행정부의 독주나 실책을 견제하고, 필요한 정책은 밀어줌으로써 의회와 행정부간의 균형정치를 이룰 수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앞으로 여소야대 국면은 이번에 이룬 여야간의 정권교체 못지 않게 우리 정치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의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회에서 입법권의 적절한 활용은 고사하고 스스로조차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금융개혁입법 과정을 보아도 지금 한나라당의 리더십이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이 간다.

당에서는 금융감독권을 총리실로 이관키로 했는데 당 소속 재경위원들은 기득권에 연연, 이를 재경원에 계속 두는 쪽을 선택해 한때 혼선을 야기했다.

이뿐 아니다.

지금 같은 긴급상황에서 당장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정리해고 문제를 내년으로 넘기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당연히 지도부에서 확고한 당방침을 시달해야 하는데 이도 저도 없이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있다.

과거의 야당처럼 나라장래는 생각하지 않고 당파적 이익에 매달리는 느낌을 줘선 안된다.

앞으로 한나라당이 결심해야 할 일은 태산이다.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각종 법안, 새 정부가 내놓을 정책 프로그램, 행정 및 지방자치 개혁안 등은 최종적으로는 국회가 검토해 결정해야 할 일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실행화 여부는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판단과 책임에 달렸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현체제냐, 집단지도체제냐를 놓고 밥그릇 싸움에 정신이 팔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가야 하는지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식이라면 집권경험 있는 한나라당이나 과거의 만년야당이나 뭐가 다른가.

한나라당이 이렇게 중심을 못잡고 무책임하고 분열적인 행태를 계속한다면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함은 물론 나라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야대 (野大)' 정국에서 권한과 함께 국정의 공동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