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는 국난극복 열쇠]1.미국 대공황 봉사로 회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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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경제가 위기상황으로 계속 치닫고 있다.

대량실업과 그에따른 사회불안이 예상되고있다.

국가나 기업이 어려울 때 민간 부분도 한동안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선진국들의 경우는 그러나 민간 자원봉사의 활성화로 불황 및 복지혜택 축소를 극복해내는데 큰 기여를 하곤했다.

우리보다 앞서 몇차례 경제위기를 맞았던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국난극복 민간활동 경험을 시리즈로 엮는다.

1933년 3월, 미국에서는 1천3백60만명의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 대공황의 시기, 취임 이틀째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신임대통령은 즉각 백악관에 고위관료들을 모이게 했다.

그동안 준비해온 시민자연보호단 (Civilian Conservation Corps) 의 출범을 최종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시민자연보호단은 50만명의 저소득층 청소년 (18~25세) 들을 전국의 산과 국립공원 등에 배치,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는 계획이었다.

참가 청소년들은 숲속에서 6개월씩 최장 2년까지 머물게하고 주 40시간 봉사의 댓가로 월 30달러씩을 지급했다.

그중 25달러는 가족에게 직접 보냈다.

또 캠프마다 교육시설을 설치, 신기술을 배울 교육기회를 제공했다.

루즈벨트의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지원자들이 몰린 것이다.

각 주 (州) 는 연방의 지원을 받아 주립 또는 국립공원 곳곳에 캠프를 설치했다.

버지니어주는 1년에 63개의 캠프를 설치하고 10만명이상의 지원자들을 받아 여러 업무에 배치했다.

42년도까지 계속된 CCC 참가자들은 모두 4백만명. 오늘날 미국의 깨끗한 숲들, 주립.국립공원은 모두 그때에 정비됐다.

미국 최초의 '국가봉사' (National Service) 단은 이렇게 대공황이라는 위기상황에서 출범이 됐다.

실업자를 구제하고 재교육을 시키며 그들 가족에겐 수당을 제공하면서 그들에게 "국가에 봉사한다" 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다면적 효과를 노린 아이디어였다.

루즈벨트의 국가봉사단 아이디어는 그후 60년대 케네디.존슨때는 '평화봉사단' (Peace Corps) , '빈곤퇴치봉사단' (VISTA) 으로, 90년대 클린턴때는 '미국봉사단' (AmeriCorps) 으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방정부만이 아니다.

보스톤시는 '도시봉사단' (City Corps) , 조지아주는 '복숭아봉사단' (Peach Corps) 을 조직하는 등 시.주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봉사단은 단원들이 일정기간 국가를 위해 일하게 하고 그 댓가로 생계비나 학자금 등을 받는 점에서 우리의 공익요원제와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무적이 아니라 자원하게 하고 그들의 관리를 민간단체들이 맡는 점에서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VISTA 프로그램은 모든 연령.계층의 사람들이 국가와 1년정도씩 계약을 맺고 빈곤지역에서 봉사하게 한다.

봉사자는 기존 직업을 떠나기 때문에 국가가 최저생계비를 지원한다.

루즈벨트는 대공황시 자원봉사 측면에서도 국민들과 이렇게 '새 계약' (New Deal) 을 맺었다.

최소한의 국가지원을 제공하면서 자원봉사의 원동력으로 경제를 살리고 재정도 절약한 것이다.

이창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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