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정채봉의 편지…'문화대통령'이 그립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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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 때이어서 어깨가 무거우시리라 믿습니다.

너무 어지러워져 있는 현실이라 한동안은 이것 치워달라, 저것 치워달라는 요청 받기에도 정신이 없으시겠지요. 저는 그냥 지극히 소박한 바람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전철에서였지요. 대통령 당선기사가 현란한 신문을 가운데 두고 나이 지긋한 두분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자네는 누굴 찍었나?” “이제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같은 사람이야 내 일터에서 내가 일해 벌어먹고 사니 내 일을 잘하면 되지. ” “맞아. 일하지 않고 정치에 빌붙어 먹고 사는 녀석들 좀 안봤으면 좋겠네.” 그렇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분들의 말에 유념하셨으면 합니다.

대통령직의 좋은 일 가운데 일 없는 건달들이 설치는 것만은 최소한 없었으면 합니다.

일찌기 대원군의 비극은 주유천하 시절의 건달들과 결별하지 못한 것도 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숙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부모를 닮아가는가를 보셨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경제 못지 않게 문화의식이 높은 대통령을 우리는 기대합니다.

경제가 몸이라면 문화는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정신의 빈약에 비해 육체의 허세는 언제 또 어떤 고통을 수반해올지 모릅니다.

우리 역사상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의 국치 (國治) 와 문화창달은 두 수레바퀴였지 않습니까. 다행히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문화입국을 다짐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 문화는 언제 한번 볕든 날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의 한 예로 문화체육부의 순수 문화에 대한 예산을 보시면 아실테지요. 철저한 음지문화입니다.

더우기 청소년문화는 불모지대라고 해도 지나친 비하가 아닐 것입니다.

어디 그들의 공연예술이 있으며, 어디 그들의 문화의 장이 있습니까. 우선 바라기는 관심입니다.

농작물도 주인의 발소리를 먹고 성장한다고 하였습니다.

경제.국방 현장을 찾는 틈틈이 문화유적지며 공연장.전시장등 그동안 홀대받아온 소외지대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와같은 통치자의 관심에 의해 정책이 나오고 발전책이 제시될테니까요. 결코 빠트릴 수 없는 또하나의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에 대한 관심못지 않게 책을 사랑하는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진지하게 책을 읽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책을 읽는 국민이 잘 산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본이 되지 못하고 한낱 구호에 불과한 과거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언젠가 미국에 갔다온 한 시인이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대통령이 어린이들을 불러 앉혀놓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눈물이 핑 돌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멋쟁이 대통령을 청하는 것은 무리일런지요. 강건하시기를 빕니다.

정채봉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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