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칼럼]부디 '똑게'가 되셔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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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다사카 히로시 (田坂廣志) 라는 사람은 '복잡系 경영' (주명갑 역) 이란 책의 첫 머리에 '경영' 이야말로 가장 진화한 복잡시스템 (complex system) 이라고 썼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따로 그 정의를 읽지 않아도 일상 업무를 통해 복잡시스템이란 것이 무엇인지 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스템 안에 여러 가지 요인이 들어 있고 그들 요인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도대체 그 시스템을 뭐라고 정확하게 기술할 수도 없고 밖에 있는 다른 시스템에 개방돼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계론적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시스템이 복잡시스템이다.

이런 의미라면 정치는 경영 이상으로 복잡시스템이다.

앞에 말한 책에는 '경영자에게 보내는 7가지 메시지'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가운데 한 메시지는 '설계와 관리를 하지 말라' 다.

이런 혁명적 메시지가 성립할 수 있게 된 것은 개체의 자발성이 전체의 질서를 낳는다는 사실을 체계 과학자들이 발견한 데 근거를 둔다.

이 현상은 창발성 (創發性 ; emergence) 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무위 (無爲) 의 지극한 효용을 설명하는 과학적 언어이기도 하다.

기계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질서는 설계와 관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리더가 할 일은 개체의 자발성을 통한 자기조직화를 다만 촉진하는 일에만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촉진이란 말이 갖는 제일의는 개체의 자발성을 막는 행위를 폐지하고 개체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최대한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지선 (至善) 이자 중용 (中庸) 이다.

지식과 정보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대량으로 흘러다니는 시대가 되었기에 이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것은 존립할 수 없게 됐다.

이것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에 대한 믿음의 재확인이다.

경영이나 정치를 기계론 아닌 '생명적 세계관' 으로 봐야 하게 됐음을 알리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세상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어쩌면 이 메시지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를 위한 맞춤옷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가 아닌 현재로서 김대중 당선자가 당면한 것이 경제공황과 동서 (東西) 갈등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19일 아침에 가진 '민주발전, 경제회생' 이란 제목의 매우 훌륭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걱정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민주발전과 경제회생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대통령이 될까봐서다.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이 79년 내부의 지근 (至近) 수하 사람한테 살해된 것을 두고 '설계하고 관리하는' 유형의 대통령 시대는 그때 이미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일어난 자멸현상이었다고 나는 여기고 있다.

최근에 들은 지도자 분류법 한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똑똑함과 멍청함, 부지런함과 게으름, 이 두 특징을 한가지씩 조합해 만든 분류 방법이다.

즉 '똑부' '똑게' '멍부' '멍게' 가 그것이다.

예를 들면 '멍부' 는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다. 아주 가난하고 비민주적으로도 다스릴 수 있는 나라의 지도자는 '똑부' 가 가장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그런 단계가 지나면 '똑게' 대통령이 나왔어야 하는데 박정희대통령은 스스로를 그쪽으로 변신시키지는 못 했던가 보다.

지금 우리나라를 위해 가장 좋은 유형은 '똑게' 대통령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다수다.

나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가장 나쁜 대통령은 '멍부' 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는 이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멍부' 대통령이 나라일을 그르칠 수 있는 것은 확률이 그래도 낮고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똑부' 가 그르칠 확률은 확실에 근접하며 규모는 엄청나다.

'똑부' 는 복잡시스템이라는 이 시대 패러다임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창발성을 무시하고 '설계와 계획' 에 나서기 때문이다.

'부디 똑게가 되셔요' .이것이 김대중 당선자에게 보내는 내가 마련한 가장 값진 축하 인사다.

강위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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