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방송위의 '허무 개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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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복 문화부 기자

지난달 30일 방송위원회엔 하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탄핵 관련 방송'에 대한 제재 여부 결정을 앞뒀기 때문이다.

방송위가 이 문제에 손을 댄 지 106일 만이다. '탄핵 방송'과 관련해선 이미 편이 갈라져 많은 상처를 남긴 후였다. 어렵더라도 소모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엉뚱한 데서 발목이 잡혔다. 주무 위원회인 보도교양심의위원회가 "결론을 못 내겠다"는 엉뚱한 '결론'을 도출한 데 이어 일부 방송위원이 "심의 대상이 안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논란은 이어졌고 오후 10시 "내일 다시 의논하자"며 회의는 끝났다.

1일 상황도 비슷했다. 오후 2시 회의가 속개됐지만 의원들은 심의 대상 여부를 놓고 여전히 설전을 벌였다. 인신 공격에 가까운 비난도 오갔다. 그리고 두 시간에 걸친 비공개 간담회 끝에 위원들은 "심의 대상이 아니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간 심의 과정을 지켜 본 이들은 한결같이 "한편의 코미디"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방송위원회가 57건의 시청자 민원을 받아들여 심의에 착수한 것은 지난 3월 17일. 지금까지 숱한 회의가 열렸고, 언론학회에 분석을 의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심의 대상이냐 아니냐'를 놓고 티격태격한 끝에 정말 허무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3개월간 무엇을 했기에 이런 초보적인 쟁점에서조차 갈피를 잡지 못했느냐는 의문이 든다. 방송위는 한쪽 손을 들어주는 데 대한 부담보다 '무능하다'는 쪽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최근 방송과 통신의 융합 문제 등 방송위가 처리해야 할 사안은 수두룩하다. 하나같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다.

탄핵 방송 하나 말끔히 처리하지 못하면서 다른 난제들을 어떻게 조정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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