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 읽기] 세상을 바꾸는 ‘발랄한 처방’ 18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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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혁명을 표절하라
트래피즈 컬렉티브 엮음, 황성원 옮김
이후, 480쪽, 2만원

세상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지구는 날로 더워지고, 그나마 석유도 언젠가 고갈될 것이다. 기업가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기에 바쁘고, 정치가들은 진정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의지도, 힘도 없다. 병원이나 제약사는 돈을 더 벌려고 불필요한 약이나 치료를 종용한다. 제도권 교육은 엉망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서서 바꾸어야 한다. 거창한 담론에 기대지 말자. 내 주변의 작은 일, 내 직장, 내 이웃, 내가 매일 배설하는 똥부터 이전과 다르게 처리하자….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반(反)권위·반 기성체제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마디로 좌파적이다. 서문도 “책의 원리는 대체로 아나키스트 사상과 자율주의 사상을 따른다”라고 밝혀놓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발랄하고 재미있고 유쾌하다. 발상 자체는 매우 심각한데 말이다.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지만 재래식(?) 혁명론은 거부한다. ‘과거의 사례를 통해, 권력을 잡는 것은 종종 혁명적인 운동들을 전복하기 위해 투쟁해왔던 바로 그 억압체제를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도부나 전위에 의지하는 수직적인 운동을 배격하고 ‘수평적인’ 운동을 펴자고 역설한다.

책은 ‘전기를 자급하는 방법’ ‘문화행동주의’ ‘미디어 되찾기’ 등 모두 18가지 운동을 제안했다. 각국의 운동 사례를 풍부한 그림·사진과 함께 설명하면서 실천 과정에서 부닥치는 난관들도 짚어놓았다. 예를 들면 먹거리를 다룬 대목에서는 ‘식량 주권’과 ‘지속 가능한 유기농’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식량을 재배할 땅 찾기’와 ‘입맛 바꾸기’라는 난제를 잘 해결하라고 강조한다. 마지막 ‘활기찬 캠페인 조직하기’ 편에서는 현수막 걸기, 파이 던지기, 길거리 파티, 팔짱끼고 저항하기, 언론 보도자료 작성하기 등 구체적인 운동 요령들도 제시했다. 편저자 ‘트래피즈 컬렉티브’는 운동가 3명이 만든 조직 이름이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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