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것 같던 시절 … 내 알몸을 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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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미술가는 불황에 익숙하다.” 맞는 말이다. 21세기에도 예술가의 헝그리 정신은 중요하다.

그런데 화가 오치균(53·사진)씨가 한 말이라면 다소 의외다. 그의 작품들은 2007년 미술 경매에서 낙찰 총액 62억 2900만원의 기록을 세웠다. 이우환·박수근·김환기 등에 이어 여섯 번째로 작품이 많이 팔린 작가였다. 풍경화 한 점이 경매에서 최고 5억원대에 거래됐다. 그해 9월 국내 최대 매출의 상업화랑인 갤러리 현대에서 연 개인전도 성황을 이뤘다.

반짝 경기가 끝나고 불황 한파가 미술 시장에도 불어닥친 요즈음, 오씨는 “당시 기분이야 좋았지만 내 것은 아니었고, 현실감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제자리로,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다음달 10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소외된 인간’에서 만난 그는 “내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는 말부터 꺼냈다. 서울대 미대생 시절이던 1970년대 후반, 학생들을 가르치는 화실을 차려놓고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등록금을 조달했다고 한다.

최악은 80년대 후반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고 오씨는 회고했다. 화실에서 번 돈을 모아 뉴욕 브루클린 대학으로 공부하러 떠났지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오씨 부부는 세탁소 다림질, 야채가게 막일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아야 했다. 화가는 당시 TV 스크린만 번쩍이는 썰렁하고 을씨년스런 방에서 옷을 벗고 온갖 자세를 취하며 아내가 사진을 찍도록 한 뒤 그 모습을 다시 그림으로 그렸다. “벌거벗은 자신이라도 그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절박감에서였다고 한다. 전시에 나온 30여 점은 이때의 인체 시리즈다. 폐광촌 사북의 검은 사계, 도회적 쓸쓸함이 물씬 풍기는 뉴욕 풍광을 붓 대신 손가락으로 짓이긴듯 그린 인상주의풍 인기작은 한참 후의 성과다.

2007년 9월 전시 때와 지금, 전속화랑에서 내놓은 그의 그림값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갤러리 현대 측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비판매전’을 내세우며 이같은 세간의 호기심을 차단했다. 02-2287-3500.

권근영 기자

사진 제공=갤러리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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