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선]김종필이 본 김대중…"40년 인고의 세월로 담금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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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를 만났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일을 해낸 것이다.

먼저 김대중후보를 당선시켜 주신 국민에게 진정으로 감사한다. 그에게 있어 대통령 당선은 파란만장한 40년 정치역정의 또다른 출발이자 마지막 종착점이다.

출발인 이상 새로움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며 종착인 이상 후회를 남기지 않는 마무리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과오는 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말을 바꾸기도 하고 약속을 깬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 보지말자. 정치인은 집권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온전하게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하며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일들은 이제 접어두자. 金대통령 당선자는 편견의 희생자며 그에게는 애증이 심하게 엇갈려 있다.

그에 대한 격렬한 호오 (好惡) 나 애증 (愛憎) 은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경영하는데 귀중한 교훈이 되고 귀감이 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믿고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그의 국가경영을 지켜보며 성원할 것은 성원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국민의 주권의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는 대통령 병에 걸린 사람으로까지 매도됐던 집념의 대통령 예비자였다. 그만큼 준비는 완벽하다.

한번 기대해 보자. 기대할 수 있고 기대해 볼 만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는 대통령후보를 양보했고 공동정권의 한 축으로서 동반의 길을 나섰다.

金대통령 당선자는 부끄러움이 많고 겁이 많은 자기 자신을 오직 신념을 갖고 극복했고 이것을 겁많은 자의 용기라고 스스로 평하고 있다.

김대중을 사랑해야 한다. 김대중의 인내와 극복, 집념과 승리를 사랑하지 못하면 누구에게도 사랑을 줄 수 없다.

나는 金대통령 당선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 단일후보 결정과정에서도 이 큰 빚을 갚는다는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도 있었음이 사실이다.

후보단일화 문제를 마지막 정리한 지난 10월27일 밤 서울신당동 나의 집을 방문한 김대중 총재는 말했다.

"나나 김종필 총재는 다같이 정치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으로서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된 사람이다. 진정으로 민주발전을 이룩하고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 내가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자손손 어떻게 되겠는가. 나를 믿어달라. "

나는 그의 진실과 진정을 믿는다.

그는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실패를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목격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다짐했을 것이다. 金대통령의 실패는 독선과 위선과 무지의 정치,가신들에게 둘러싸인 부패한 파당의 정치에 있다.

그는 이같은 잘못은 결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金대통령 당선자의 영광은 집권에 있지 않고 나라에 대한 헌신과 국민에 대한 봉사에 있다.

두번의 사형선고를 포함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굳건히 일어선 그의 의지와 신념은 오늘의 국가위기를 이겨내는 큰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는 이제 길고 험했던 그 인고 (忍苦) 의 세월을 조국을 위한 마지막 헌신으로 후회없이 끝맺음할 것으로 믿는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이뤄낼 정치의 실체는 말과 약속이 아니라 행동이며 실천이다.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과 신념을 갖고 현실을 뚫으며 고집스럽게 전진해야 한다.

그런 의지와 용기와 결단이 金대통령 당선자에게는 있다. 인자불우 (仁者不憂).지자불혹 (知者不惑).용자불구 (勇者不懼) 라고 논어 (論語) 는 말하고 있다.

걱정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그의 일생을 일관했던 집념과 의지는 반드시 국난을 극복하고 조국의 영광을 다시 이룩해 낼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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