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 검찰 ‘모진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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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9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9층 회의실. 당시 취임한 지 보름쯤 된 노무현 대통령이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함께 들어섰다. 전국에서 대표로 선정된 40명의 평검사와 토론하는 자리였다. 당시 검찰이 ‘서열 파괴 인사’에 집단 반발하자 노 대통령이 직접 대화에 나선 것이었다. 이 ‘검사와의 대화’는 TV로 생중계됐다.

이석환 인천지검 검사는 이 토론회에서 “SK그룹 수사 도중 여당 중진 인사나 정부 고위 인사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서울지검의 SK 분식회계 사건 수사팀에 파견된 상태였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검사가 소신껏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정만 서울지검 검사는 “대통령이 (검찰 중립) 소신을 가졌지만 혼자만으로 힘들다. 최근 대통령 형님의 해프닝도 있다”고 지적했다. 노건평씨의 ‘인사 청탁’ 논란을 거론한 것이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통령의 형님이, 어수룩한 사람 있는데 굳이 얘기해 대통령 낯을 깎을 일 있느냐. 정말 이런 식으로 하겠느냐”고 했다.

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두 검사는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최일선에 서 있다. 이석환 검사는 대검 중수2과장으로, 이정만 검사는 대검 과학수사담당관으로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다. 또 당시 SK 수사팀 책임자로 이석환 검사가 제기한 외압설에 관해 “외압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던 이인규 서울지검 형사9부장은 현재 대검 중수부장으로 이번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모진 인연이 새삼스레 주목받게 된 것이다.

당시 토론회에서 노 전 대통령 입에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말이 튀어 나오게 했던 것은 김영종 수원지검 검사의 질문이었다. 김 검사는 “과거 후보 시절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를 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으로 있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뇌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곧바로 사직서를 냈던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은 변호사 개업을 한 뒤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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