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수업 알찬데 학원 왜 가” 사교육 잡는 방과후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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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봐, 곱셈 공식은 외우려만 말고 원리를 이해해야 돼.”

문수녕(15·서울 장평중 3)양이 3학년 1학기 수학 문제를 못 풀어 쩔쩔매자 오시라(27·여) 교사가 도와준다. 14일 오후 8시 서울 장안동 장평중 방과후 학교 ‘내신다지기 반’의 모습이다. 15명의 학생은 오 교사에게 과외를 받듯 문제를 풀어 나갔다. 지난해 여름방학부터 개설한 이 인기 강좌는 국어·영어·수학을 일주일에 사흘 세 시간씩 운영한다. 문양은 “수업이 알차 학원을 아예 끊었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8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장평중 3학년 방과후 학교에서 오시라 교사(左)가 수학 문제를 푼 학생을 칭찬하자 학생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김상선 기자]


4년째를 맞은 방과후 학교가 사교육과 본격 경쟁 중이다. 경기 침체로 돈이 많이 드는 학원을 그만두고 방과후 학교를 찾는 학생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김대인 장학관은 16일 “학기 중에는 물론 방학까지 독서실을 열고 급식을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가 늘고 있다”며 “서울 지역 중·고교의 참가 학생이 지난해 전체의 40%에서 올해는 50%를 웃돈다”고 말했다.

◆사교육비 부담 줄인다=장평중은 지난해 내신다지기 반에서 두 명의 특목고생을 배출했다. 서울국제고에 합격한 허운혜양은 “학원에서는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 없지만 방과후 학교에서는 신문 사설을 보거나 영문 잡지를 읽으며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허양의 어머니 신영숙(47)씨는 “학원에 의존했던 큰애와 달리 과목당 수강료가 월 6만원을 넘지 않아 부담도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방과후 학교 수강료는 보통 과목당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일반 단과학원의 강의료는 월 30만~40만원, 인터넷 강의는 월 10만원 이상이어서 비교적 저렴하다.

교육과학기술부 안명수 학력증진지원과장은 “정보 제공 같은 학원의 기능을 학교가 보완하면 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실시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방과후 학교 참여율이 높은 20개 고교를 조사한 결과 모두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서울 평균(12.2%)보다 낮았다. 20곳 중 가장 낮은 곳은 성북구 정릉동 D고로 0.4%, 가장 높은 곳은 양천구 신월동 G고로 11.6%였다.

서울 대치동의 숙명여고도 방과후 수업에 열중이다. 특히 교사 간 선의의 경쟁이 치열하다. 50여 명의 교사가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건 강좌를 만들지만 실제 학생이 선택해 개설한 강의는 10개 남짓이다. 2학년 최모양은 “모의고사를 직접 출제하고 교재 집필도 많이 하는 선생님 강의를 선호한다“며 “신청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교원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을 활용하기도 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중은 지난해 9월부터 서울대생 9명을 불러 ‘학습법’ 강의를 맡겼다.

◆학원업계 반발=한국학원총연합회는 “학교가 사교육 영역까지 맡으면서 학원강사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회 측은 “의무교육기관인 초·중학교에서 수강료를 받고 방과후 교육을 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평등한 교육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주장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생·학부모의 수요에 맞춰 운영하므로 학원이 반발할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원진·이승호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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