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양심을 팝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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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68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제1서기가 된 알렉산데르 두브체크는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 확립이 절대 필요하다고 믿었고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등 획기적인 조치를 통해 '프라하의 봄' 을 열었다. 프라하의궤도 이탈에 당황한 소련은 8월20일 밤 바르샤바 동맹군을 앞세워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고 두브체크 등 당 지도부를 체포했다.

그들은 폴란드를 거쳐 모스크바로 압송됐다.

이때 두브체크 등이 '반 (反) 혁명' 의 죄목으로 처형되지 않은 것은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이 점령군에 대한 반감을 철저히 드러낸 덕분이라 한다.

소련 지도부는 체코슬로바키아 사태 수습을 위해 두브체크와의 타협이 꼭 필요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협상안 서명을 거부하며 며칠을 버티던 두브체크를 결국 항복시킨 것은 신경안정제였다고 한다.

생기 잃은 모습으로 귀국한 두브체크는 울면서 라디오방송에 임했다.

"국민 여러분, 이 방송이 도중에 이따금씩 끊기는 일이 있더라도 이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일국의 최고지도자들조차 개처럼 끌려가 온갖 강압과 회유, 심지어 신체조작까지 겪으며 뜻을 꺾이던 전체주의 체제에서 '양심선언' 은 이 세상에 소금이었다.

⑴폭압체제의 존재 ⑵양심선언 주체의 존재 ⑶양심선언 전달수단의 존재가 양심선언의 성립조건으로 꼽힌다.

나치체제보다 공산권에서 양심선언이 활발했던 것은 국제앰네스티 등 양심선언 전달수단이 발달한 덕분이라 한다.

우리 사회도5공시대까지는 양심선언의 가치를 요긴하게 누렸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양심선언' 을 보면 세 가지 조건 모두가 의심스럽다.

특히 전달수단을 자임하는 정당이 오히려 주체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다.

부재자투표 전날밤에 터뜨려 놓고 종적을 감춘 '양심' 이 있으니 본투표 전날인 오늘밤에는 또 어떤 일방적 '양심선언' 들이 뛰쳐나오려는지. '파우스트' 의 독자들에게 주인공의 모습은 비교적 쉽게 떠오른다.

그에 비해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은 멀고 흐릿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선 메피스토펠레스가 주역이 돼버린 것이 아닐까. 영혼 하나 못 사서 쩔쩔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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