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소말리아 해적 왜 근절 안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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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4일(현지시간) 한낮 소말리아 인근 공해상. 구호 물품을 싣고 케냐 뭄바사로 향하던 미국 화물선 ‘리버티 선’ 호에 비상이 걸렸다. 어디선가 나타난 해적들이 무기를 난사하며 배를 납치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 해군이 해적 3명을 사살하며 인질 구조작전을 펼친 데 대해 해적들이 “보복”을 선언한 지 채 하루 만이다.

로켓포탄이 선실 벽을 관통했고 총탄이 쏟아졌다. 배에 타고 있는 미국 국적의 선원 20명은 무전으로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내는 한편 기관실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했다. 6시간 뒤 구조에 나선 미 해군 전함 베인브리지 호가 ‘리버티 선’ 호로 접근했다. 해적들은 그제야 납치를 포기하고 도주했다. 베인브리지 호는 리처드 필립스 선장 구출작전을 주도했던 전함이다.

‘리버티 선’호 공격을 지휘한 해적 두목 압디 가라드는 15일 AFP통신에 “이번 공격은 우리의 주요 타깃에 대한 최초의 공격”이라며 “미국 국기를 단 ‘리버티 선’ 호를 파괴하려 했으나 그들은 간발의 차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가라드는 이어 “이번 공격의 목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몸값을 바라고 공격한 게 아니다”며 “친구들의 참혹한 죽음에 보복하기 위해 미국기를 단 모든 선박을 추적해 파괴하도록 특수 장비를 갖춘 팀을 파견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 컨테이너선 머스크 앨라배마호 선장 구출 작전 시 3명의 동료 해적이 사살된 데 대한 응징으로 미국 선박을 공격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해적들이 다시 소말리아 해상을 누비고 있다. ‘리버티 선’ 호는 간신히 납치를 면했지만 이날 하루에만 화물선 두 척이 피랍됐다. 그리스 선적의 3만5000t급 ‘MV 이렌’ 호와 토고 선적의 5000t급 ‘MV 시 호스’ 호다. 전날엔 이집트 트롤어선 두 척이 납치됐다. AP통신은 잇따른 납치 소식을 전하며 “해적들이 평소처럼 영업에 복귀했다”고 전했다.

◆해적들은=소말리아는 1991년 무하마드 시아드 바레 군사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무법천지가 됐다. 이슬람 군벌 간의 내전으로 인구(1000여만 명)의 10%가 목숨을 잃었고, 경제는 엉망이 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00달러에 불과하다. 내전과 가난에 쪼들린 젊은이들은 돈벌이를 위해 앞다퉈 해적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그 규모가 25여 개 조직 1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적들의 근거지는 주로 소말리아 북동부와 중부 지역이다. 하지만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FP) 인터넷판은 14일 “해적들이 본거지 외에도 해안선을 따라 여러 곳에 보급기지를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육상에는 해적질을 지원하는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다. 일부 돈 많은 사람은 해적들에게 ‘투자’를 한다. 인력 모집과 무장 등에 필요한 자금을 댄 뒤 해적들이 몸값을 받으면 ‘수익금’을 나눠 갖는다는 것이다.

해적들은 가난에 찌들어 사는 다른 소말리아인들에 비해 훨씬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해안에 고급 빌라를 짓고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그래서 소말리아에선 해적이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히기도 한다. 해적들이 선박을 납치할 때는 근해에 모선(母船)을 띄워놓고 쾌속정을 이용해 공격한다. 항해를 맡는 어부와 실제 교전을 담당하는 퇴역 군인, 위성항법장치(GPS)를 다루는 기술자 등 6~10명이 한 팀을 이룬다. 무기는 주로 예멘 등 인접 국가에서 구입한 AK-47 소총과 경기관총, 로켓포(RPG) 등이다.

◆활동무대 확대=AP통신은 올 2월 말 이후 소말리아 해적들이 총 78척의 선박을 공격해 19척을 납치했다고 보도했다. 이 중 몸값 협상이 끝나지 않은 16척, 인질 300여 명은 아직까지도 억류 중이다. 몸값은 인질 숫자와 배의 크기, 화물의 값어치 등을 따져 납치 건당 평균 100만 달러(약 13억원) 이상 받는다. 케냐 정부는 지난해 해적들이 이렇게 긁어 모은 돈이 1억5000만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해적들이 설치자 미국·러시아·중국 등 각국은 앞다퉈 전함을 파견했다. 그러자 해적들은 순찰이 심하지 않은 서인도양 등 먼바다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있다.

유철종·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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