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의 FUNFUN LIFE] 가난한 아이들이 내게 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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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나는 특별한 곳을 향해 집을 나선다. 컴패션(해외아동결연단체) 식구,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이다. 고아원·양로원·복지시설·병원 등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봉사라는 게 쉬울 수도 있지만 선뜻 나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평범한 사람일 땐 돈이 없다고 못했고, 연예인이 된 후에는 바빠서 못하고…. 참 시답잖은 변명이기도 하지만, 그랬다.

돈을 많이 내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봉사를 시작한 후 그들은 돈보다 사람들의 손길에 목말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든, 어른들이 있는 곳이든, 환자들이 있는 곳이든 선물보다는 우리가 한번 손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에 행복해하는 표정을 난 보았으니까.

노숙자들에게 밥 봉사를 하는 날이었다. 다들 밥을 얻어먹으려고 치열하게 줄을 선다. 나는 숟가락 당번이었다. 하지만 다리 아프게 서서 숟가락을 나눠주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들에게서 풍기는 악취였다. 그 냄새가 너무 괴로워 숨을 참았다가 고개를 돌려 한번에 내쉬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악취에 일그러진 얼굴에 썩은 미소를 띤 내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져 더욱더 참을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그래도 그들은 고맙다며 웃어줬다.

장애인 복지시설에 갔을 때였다. 그곳엔 나와 동갑내기인 샤론이라는 정신지체 장애인이 있다. 여기서 나는 ‘스톤’이란 애칭으로 불렸고, 그래서 우린 ‘샤론 스톤’이 됐다.

당시에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샤론은 자꾸 신랑한테 밥해주러 가라며 난리다. ㅋㅋ 하나, 이들한테만큼은 ‘그건 가상이라고, 진짜 신랑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겨우 지능이 일곱 살 정도인 그의 마음이 누구보다 순수했다는 걸 느꼈기에…. 난 그녀에게 단지 함께 어깨동무해주고 하이파이브밖에 해준 게 없는데 샤론은 나에게 “뽀~”(황본데 자꾸 황을 빼고 부른다)라고 부르면서 또 웃어준다.

지난해에 방글라데시로 단기 선교를 갔다. 나는 그때 먹었던 말라리아 약이 너무 독해 심신상태가 최악이었다. 아파서 지쳐 있는 나에게 말도 통하지 않는 한 아이가 와서 얼굴을 쓰다듬어주면서 또 웃어준다. 이상하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냥 단지 안아주고 놀아줬을 뿐인데 그들은 날 보고 웃어주고 고맙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아이티라는 나라에 다녀왔다. 먹을 것이 없어 식량 대신 진흙 쿠키를 먹으면서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진흙을 말려서 만든, 말 그대로 진흙 쿠키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처럼 수많은 아이가 우리만 보면 먹을 것을 달라며 따라다닌다. 줄 것이 부족해서 더 줄 것이 없자 아이들은 그냥 돌아갔다. 이런 애들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두 배나 커진다.

그럴 때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먹을 것이 부족했었다는데 말이다.

여태껏 나는 봉사라는 게 남을 돕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해보니 아니었다. 오히려 도움을 받는 건 나였다. 그들을 웃게 하려 했던 게 나를 웃을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엔 봉사하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가식으로 보이지 않을까, 이미지 관리라며 욕먹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이조차 결국엔 내 이미지만 따지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몇몇 사람, 내 팬클럽마저도 나로 인해 봉사를 시작하고, 가난한 아이들과 결연하게 됐다는 얘기를 전해들을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내가 한 것이 아닌데도 내가 한 것마냥 들뜨고 자신감도 생긴다.

가식적이라고 나를 욕하고 싶은 분들! 가식적으로라도 봉사 한번 해보시길. 그것도 영원해지면 괜찮으니까. 나중엔 그 가식이 진심으로 바뀌는 걸 체험하게 될 겁니다. 모든 사람이 봉사만큼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했음 좋겠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이 돼 버린단 걸 느끼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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