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선 공약점검]증시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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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참으로 '악' 소리 나는 주식시장이다.

지난주 종합주가지수는 359.83으로 마감, 연중 최고치 (792.29) 대비 54.5% 하락했다.

지난 20년간 이렇게 단기간에 이런 급락률을 보인 적은 없었다.

주식시장에 대한 비책 (비策) 이 과연 존재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 정부 (특히 재정경제원) 관리들은 '주가 하락은 정부 책임' 이라는 생각을 잠재의식에 깔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면 습관적으로 안정책을 내놓는다.

말이 '안정대책' 이지 '주가부양책' 이다.

10월13일과 19일 연거푸 증시안정대책을 발표했고, 11월26일에는 8조원을 투입하는 극약처방을 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세 후보중 주가부양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김대중 국민회의후보다.

국민회의는 11월29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행과 공공자금 관리기금을 통해 3조원 이상의 주식매수자금을 즉각 투입해야 한다" 고 주장하면서 "증권시장 붕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임시휴장 조치를 취하라" 고 정부에 촉구했다.

김대중후보의 입장엔 지금도 변화가 없다.

이에 대해 이회창 한나라당후보.이인제 국민신당후보는 반대의견을 분명히 한다.

이회창후보는 "시장을 개방한 상태에서 대외적인 신뢰만 떨어뜨릴 뿐" 이라는 주장이고, 이인제후보는 "거래중단은 투자자가 손익을 조절할 수 있는 매매기회를 빼앗기 때문에 오히려 투자자 보호에 역행한다" 는 입장이다.

사실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 휴장한다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라면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주가 폭락의 요인에 대한 분석도 각각 다르다.

이회창후보는 향후 경제에 대한 비관 팽배와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꼽고 있다.

김대중후보는 환율.금리의 급등에 따른 자금시장의 불안 탓으로 돌리면서 국제통화기금 (IMF) 합의 이후 금융기관들의 자금확보 전쟁에 따른 주식매도도 일조했다고 본다.

한편 이인제후보는 금융기관의 부실규모 노출로 인한 국제신인도 급락과 그에 따른 환율폭등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본다.

당연히 대책도 달라진다.

이인제후보는 "증권투자에 대해 한시적으로 출처조사를 면제해 주식투자 수요를 창출하자" 는 입장이고 김대중후보는 문제의 시급성을 감안, 앞서 언급한대로 주식매수자금을 투입하고 증권거래세를 면제하는 등 직접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비해 이회창후보는 "금융시장 불안 해소" 가 가장 확실한 대책이라고 주장, 차이를 보인다.

즉 김대중.이인제 두 후보가 돈을 투입해서라도 살리고 보자는 입장인 반면 이회창후보는 원인을 치료하자는 주장이다.

장기대책으로 이회창후보는 "경제를 살려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해야 한다" 고 말하고, 이인제후보는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고부가.고효율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대중후보는 "기관투자 수요의 확대, 신용평가 기능의 활성화, 기업회계정보의 신뢰도 제고" 등 구체적인 처방에 관심을 보인다.

김대중후보는 경제회생없이 주가가 오르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이회창.이인제후보도 투명한 기업회계 없이는 주식투자자가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같다.

그렇다면 세 후보의 장기대책에 근본적인 차이점은 없는 셈이다.

더욱이 무기명 장기채권 발행을 허용해 지하자금을 양성화, 당면 위기를 극복하고 증시를 활성화하자는 입장에도 세 후보간 차이가 없다.

지난 11일부터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개인 50%까지 확대돼 많은 기업이 외국인에 의한 국내기업의 인수.합병 (M&A) 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발행주식의 10% 이상을 취득하자면 이사회의 결의를 필요로 하는 등 아직도 제약요인이 있다고는 하지만 경영권은 완전히 노출됐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 세 후보의 입장은 어떤가.

이회창후보는 "대외개방은 대세" 임을 강조하고 김대중후보는 "외국기업의 진출은 선진 경영기법을 습득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 반대하지 않는다.

이인제후보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경영자들을 훈련시키는 기능을 한다" 고 찬성하면서 "과도한 M&A로 경제주권이 침해 당할 가능성에 대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고 말한다.

기간산업에 대한 M&A 허용은 3당 후보가 공통적으로 "신중히 검토할 사항" 이라고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세 후보 모두 중소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당장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중 하나가 코스닥 (장외시장) 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코스닥은 증권거래소 상장요건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에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세계적인 컴퓨터 관련 기업인 인텔.마이크로소프트사도 창업초기에는 코스닥 덕을 톡톡히 보았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코스닥을 활성화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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