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새로운 영화 '프레지던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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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대통령은 한국서민들의 단골 안주다.

물론 아주 사적인 자리에서 그렇다.

공적인 데서는? 대통령은 '왕' 이요 그에 대한 비방은 종교적 금기였다.

문학도.영화도.노래도 그 금기의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고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라며 목청껏 자부했다.

이 모순된 시스템이 곪아 터져 마침내 우리는 지금 우리의 참담한 실태를 바라보고 있다.

비디오 담당기자에게는 하루 평균 서너편의 비디오가 배달된다.

그 중 '프레지던트' 라는 미국영화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비리를 전직 대통령에게 누명씌우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공동작전에 의해 거꾸로 당한다는 평범한 코미디다.

그런데 이 영화에 작금의 우리 상황을 비춰보니 우리에게는 신나게 돌아다니는 전직 대통령들도 없고, 또 그들의 정면에서 그들을 비난해본 경험도 없었다는 것이 못내 유감스러운 것이었다.

또 생각치도 않게 화면에 등장하는 현대 차 '포니' , 기관원들에게 쫓기는 전직 두 대통령이 힘차게 몰고가는 그 작은 우리 차를 보자니 '잘 나가던' 한때가 생각나 분통마저 치미는 것이었다.

아래는 두 대통령이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어느 가족을 만나 폼을 잡다가 한방먹는 장면. 대사는 기자가 조금 과장했다.

남편 : 아이구 대통령 두 분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다니. 여보, 얘들아 이리 와서 나란히 앉아. 사진 찍어 줄께. 괜찮으시죠? 헤헤헤. 아내 : 당신은 속도 없수?

우리가 이꼴로 거리로 나앉은게 누구 탓인지 몰라서 그러우. 사진은 무슨 우라질. 오하이오 삼촌네 공장에 일자리가 없으면 우린 끼니 때우기도 힘들어요. 잔소리말고 거기 애 기저귀나 이리 줘요. 남편 : 여편네가 무식하긴. 뭐 나라 일을 대통령 혼자서 하나?

이분들은 잘 해보려 했는데 아랫 것들이 뜻을 못 받든 거지. 안 그렇습니까, 각하 여러분. 히히히. 아내 : 애들 앞날이 걱정도 안 돼요? 이게 다 누구 탓이냐구요? 선거 때는 일자리를 늘리니 세금을 줄이니 어쩌니 좋은 소린 다 떠들고선 백악관에 들어가기만 하면 입 싹 딱잖아요? 이 양반들 저 희멀건한 얼굴들 좀 봐요. 긴축재정이나 뭐다 해서 우리는 이렇게 집도 없이 떠돌고 있는데…. 국민들한테 허리띠를 졸라라 마라 하면서 자기들은 다 뒷문으로 빼돌리는 거 당신은 몰라서 그래요?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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