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샛별] 요한슨 현악 콩쿠르서 ‘큰 일’ 낸 이상은 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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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左)는 이상은양을 6년째 가르치고 있다. 이양은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나면 제 음악이 늘 한 차원 높아진다”고 말한다. [이상은 제공]

 지난달 14일 미국 워싱턴에서 막을 내린 제5회 ‘요한슨 국제 청소년 현악 콩쿠르’에서 이상은(16·첼로)양이 1위에 올랐다. 처음 도전한 국제 콩쿠르에서 거둔 성적이다. 하지만 이양의 어머니 이혜경(46)씨는 “소식을 듣고도 담담했다”고 기억한다. 딸을 홀로 대회에 내보내고 한국에 남아있던 이씨가 정작 눈물을 흘렸던 때는 수상 이후가 아니다. 딸이 결선 무대에서 연주할 시간에 혼자 울었다. 비행기삯이 없어 아이만 멀리 낯선 땅에 보내야했던 아픔 때문이다. “더이상 빚은 못 내겠다”며 어머니는 미국행을 포기했고, 이양은 웅진재단(이사장 신현웅)의 도움을 받아 콩쿠르에 도전할 수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딸의 음악 교육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이의 재능 때문이다. 이양은 올해 초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최연소 입학하는 기록을 세웠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바로 대학으로 진학한 것이다. 스승 정명화(65)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는 이양을 가리켜 “아주 특별한 재능을 지녀 큰 성공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2년 전부터 이양에게 레슨비를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이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을 잡지에서 보고 찾아갔다”고 했다. 여름 음악캠프에서 한 번 연주를 들은 정 교수는 그를 제자로 받았다. 이전까지는 동네 학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첼로를 잡은 것이 전부였던 학생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후 국내 콩쿠르를 휩쓸고 예원학교에 입학한 이양은 실기시험마다 1등을 도맡았다. 이런 이양에게 정 교수는 “고등학교에 가느니 아예 대학에 가서 제대로 공부하자”고 권했다.

실력은 대학 진학에도 충분했지만 여건은 그렇지 않다. 3년 전에 산 첼로는 훌쩍 커버린 몸에 맞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쓴 활은 너무 가볍다. “좀 더 좋은 악기로 깊고 큰 소리를 내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일단 이 악기로 할 수 있는만큼 해봐야죠.” 이양은 10년 전 외환 위기 이후 어려워진 집안 형편을 이해하는, 속깊은 막내딸이다. 콩쿠르를 위해 빌린 악기를 주인이 다시 가져갔을 때도 낡은 악기를 보듬어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정명화 교수는 “악기를 잘 다루는 아이들은 많다. 하지만 상은이는 음악을 잘 한다. 어린 나이에도 음악의 깊이를 안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조건을 갖춘 학생”이라고 평했다. 이번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앞으로 보여줄 놀라운 성과가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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