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실물경제 현장]기업간 거래도 신용붕괴 위기…어음·외상 기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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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융위기가 기업 대 (對) 기업간 거래에서도 신용공황을 초래하고 있다.

금융불안이 기업에까지 번져 거래기업간이나 모기업.협력업체간에도 신용이 붕괴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현금이 아니면 거래가 되지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거래처의 신용부실을 우려해 납품을 줄였고, 어음을 받기보다 물건을 창고에 쌓아둔 채 납품을 아예 끊는 업체도 있다.

더 나아가 아예 생산을 중단한 채 당분간 휴업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현금결제를 요구하면서 모기업에 대한 부품공급을 끊는 협력업체도 적지않다.

중견 산내들그룹은 최근 일부 신용이 좋지않은 거래처에 물품공급을 중단했다.

그룹 관계자는 "매출이 많아도 거래처에서 부도가 나면 헛장사가 된다" 며 "팔 데가 있어도 신용이 A급으로 평가되지 않으면 팔지않고 대신 생산을 최소화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그룹은 지난달부터 전문 건설.식품 등의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가량 줄었다.

대우중공업 공작기계부문 관계자는 "납품대금으로 어음을 준다는 업체들에 대해서는 담보나 연대보증인이 없으면 팔지않고 있다" 고 말했다.

이 회사도 지난달 이후 매출이 30%이상 줄었다.

사출성형기 설비업체인 동신유압측은 "지난달엔 거래처 신용을 체크해 선별 수주했으나 이달 들어서는 상담조차 끊은 상태" 라고 말했다.

또 일진그룹 관계자도 "판매보다 깔려있는 채권의 회수에 주력하고 있다" 며 "잔업.특근 등 조업시간과 경비를 줄이는데 노력하고 있다" 고 말했다.

서울대방동에서 니트의류를 생산 (연 매출액 1백억원) 하는 K섬유는 거래를 중단하고 휴업에 들어간 케이스. 이 회사는 현재 5천만원의 부도맞은 어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현재 계약된 물량만 납품하고 일단 내년 3월까지 휴업키로 했다.

더이상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큰 어음을 받기보다 차라리 생산을 일정기간 중단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 회사 金모 (42) 사장은 "10명의 종업원에게 3월까지의 기본급을 지급하면서 쉬는 게 차라리 낫다" 고 말했다.

산업용 로프를 생산하는 서울구로동의 H상사는 현금을 주지않는 거래선의 부도를 우려해 거래를 전부 끊었다.

이 회사는 어음수령액이 5천만원을 넘어서자 창고에 물건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거래를 더이상 하지않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경우는 협력업체들이 어음이 아닌 현금결제를 요구하면서 납품을 끊는 바람에 일부 공장이 일시 중단상태에 빠졌다.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가 이 회사에 대한 타이어 공급을 일부 중단했으며, 일본의 마쓰시타도 오디오에 들어가는 오디오 부품 공급을 끊었다.

이 때문에 기아 소하리공장이 이번주말까지 전면 가동중단되고 있다.

또 파워핸들을 납품하던 TRW사가 공급을 중단하는 바람에 전 공장의 가동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TRW 관계자는 "기아의 진성어음을 받아봐야 할인이 안되거나 30~50%에 달하는 할인율을 금융기관이 요구하기 때문에 사실상 어음이 결제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고 말했다.

기아그룹 관계자는 "언제 다른 협력업체들이 현금결제를 요구하면서 부품공급을 끊을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고 말했다.

쌍용그룹 재무팀의 강대중차장은 "금융기관의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과 금융기관간 불신이 심화됐으며 기업간에도 마찬가지 상태가 번져 신용의 아노미 (혼돈)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박영수·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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