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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추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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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내 안에 있어도 내 것이 아닌 게 있다. 욕망이 그렇다. 욕망을 품는 것은 나다. 그러나 욕망은 종종 내가 통제할 수 없다. 질투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한번 불 일 듯 일어나면 나는 속수무책이다. 헌신이나 나눔 같은 고귀한 행동은? 그것들 역시 진정한 기쁨으로 다가와 제2의 천성으로 굳어지기 전까지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지식도 열정도 사랑도 의지도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다.

이런 인간의 요소들을 펄떡거리게 하는 게 생명이다. 생명은 신선한 에너지다. 약동하는 빛이다. 생명은 눈부시다. 그 생명을 내가 어느 날 받아 태어났다. 하지만 내가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내게 생명을 주신 이가 따로 있다. 그가 때가 되면 생명을 거둬가리라. 생명이야말로 내 안에 있어도 내 것이 아니다. 하물며 남의 생명력에 상처를 입힐 순 없다.

이슬람교의 교리는 생명 존중으로 가득차 있다. 유일신 알라는 "너희를 상대하여 싸우는 자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라. 그러나 침략하지 말라"(코란 2:190)고 계시했다. 1400년간 다듬어온 이슬람법의 전쟁 규칙은 "전투원들끼리만 전투하라. 비전투원을 살해해선 안 된다"고 적고 있다.

고 김선일씨를 살해한 집단의 이름 '일신과 성전'은 유일신을 위해 성스러운 전쟁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과 대적할 의사가 없는 김선일씨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의 계시를 배반했다. 그들은 비전투원을 살해함으로써 스스로 표방하는 신앙의 법을 어겼다. 그들은 무슬림 전사의 복면을 했지만 무슬림이 아니었다.

어제 고향에서, 분리된 자기 육체를 보며 하늘로 올라간 김선일씨의 영혼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생명은 하나님이 거둬가는 것이다. 나는 내 안의 약동하고 빛나는 생명력을 관리할 뿐. 나든 남이든 생명을 끊는 자는 하나님께 범죄자다."

2001년 미국의 9.11을 보면서 망연자실, 생명의 허망함밖엔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저 뭉게뭉게 잿빛 꽃더미에 멀미만 했었다. 2004년 대한민국의 6.22에서 눈을 부릅뜨고 생명의 귀함을 생각해 본다. 붉은꽃 한 송이 이야기가 어른과 아이들, 그 아이의 아이들에게 전승될 것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