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현실 외면한 문체부 생색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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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쥬라기공원' '인디펜던스 데이' 등 할리우드 흥행작들의 국내 수입가는 단돈 5천달러다.

미국 직배영화이기 때문이다.

관객 한 사람의 극장 입장료 6천원중 직배사에 돌아가는 몫은 3천원선. 전국 관객 2백만명에 육박하는 소위 '대박 터진' 영화의 경우 흥행수익금 60억여원이 고스란히 미국 본사로 보내진다.

흥행작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국내 극장들은 여름.겨울 시즌에 대작 직배영화 한 편을 잡기 위해 비시즌에도 직배사들의 '별 볼 일 없는' 영화들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개봉한다.

그만큼 직배영화들은 우리 영화시장의 60%를 차지하면서 극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UIP.20세기 폭스.디즈니.워너 브러더스.컬럼비아 등 국내에 진출해 있는 직배사들이 본사에서 그냥 가져와 국내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결과적으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흥행수익이 달러로 빠져나가는 후불제 수입인 셈이다.

반면 직배가 아닌 외화들은 국내 수입사가 일정액을 미리 지불하고 수입해오는 선불제. 적자건, 흑자건 흥행액수는 국내 영화사의 몫이다.

최근 외화수입이 문제가 된 것은 대기업들이 과당경쟁으로 외국 영화들을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문화체육부가 들고나온 영화 관련 외화절감 대책은 직배영화의 판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견을 드러낸다.

문체부는 1백만달러가 넘는 영화에 대해선 수입허가를 내주지 않도록 하겠다는 규제방침을 밝혔지만 이 대상에 '값싼' 직배영화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영화사들이 적정가격에 외국 영화를 들여와 달러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형평에 어긋나는 일방적인 규제가 오히려 직배영화에 시장을 더 내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위로부터의 '규제' 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권위적인 발상 또한 구태의연하다.

적자누적에 허덕이던 대기업 영화사들은 이미 올초부터 수입가를 낮추려는 자율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게다가 미리 계약한 작품들이 환율폭등으로 20억~30억원의 환차손을 보여 이젠 비싼 작품을 사려야 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대기업 영화사측은 정부 방침을 은근히 반기는 눈치다.

이를 공식적인 핑계로 삼아 잔금지불을 미룰 수 있어서다.

그러나 자율적인 시장경제논리에 어긋나는 정부의 개입은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신용도를 더욱 떨어뜨릴 뿐이다.

이남<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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