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이용희 선생님 영전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동주 (東洲) 李用熙선생님은 한국 국제정치학계의 태두이시며 한국적인 국제정치이론을 정립하신 불세출의 학자였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갑자기 타계하신 것은 학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의 슬픔이며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에 벌써 서울대 문리대에서 교편을 잡으셨으며, 특히 56년에는 '외교학과' 를 창설하시어 한국의 국제정치학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만드셨습니다.

현재 1천명이 넘는 외교학과 출신들이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선생님의 학은 (學恩)에 힘입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글자 그대로 박학다식한 분이셨습니다.

거리낌없는 외국어가 7~8개에 달하고 동.서양의 철학,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언제나 후학들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학문적인 배경에서 62년 세상에 내어놓으신 '일반국제정치학' 은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세상에 남게 될 것입니다.

반 (反) 강대국의 입장에서 국제정치학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느냐라는 이론적인 틀을 마련하신 저술이며, 70~80년대부터 유행해온 비교국제사회론에서 말하는 '문화권' 은 선생님이 창안하신 '권역' 이론에 비하면 한낱 아류 (亞流)에 불과합니다.

선생님은 또한 한국미술사 분야에도 불후의 명작들을 발표하신 바 있습니다.

선생님이 학문을 대하시는 자세가 철저하기로는 남다른 면이 있으셨습니다.

방대한 자료의 검색과 객관적인 고증에 입각하시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과작 (寡作) 의 연유입니다.

선생님이 가신 후 저희 후학들은 학자로서의 선생님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들 후학들은 남기신 가르침을 더 천착하여 '동주학 (東洲學)' 의 전통을 계승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金容九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