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東洲) 李用熙선생님은 한국 국제정치학계의 태두이시며 한국적인 국제정치이론을 정립하신 불세출의 학자였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갑자기 타계하신 것은 학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의 슬픔이며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에 벌써 서울대 문리대에서 교편을 잡으셨으며, 특히 56년에는 '외교학과' 를 창설하시어 한국의 국제정치학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만드셨습니다.
현재 1천명이 넘는 외교학과 출신들이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선생님의 학은 (學恩)에 힘입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글자 그대로 박학다식한 분이셨습니다.
거리낌없는 외국어가 7~8개에 달하고 동.서양의 철학,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언제나 후학들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학문적인 배경에서 62년 세상에 내어놓으신 '일반국제정치학' 은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세상에 남게 될 것입니다.
반 (反) 강대국의 입장에서 국제정치학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느냐라는 이론적인 틀을 마련하신 저술이며, 70~80년대부터 유행해온 비교국제사회론에서 말하는 '문화권' 은 선생님이 창안하신 '권역' 이론에 비하면 한낱 아류 (亞流)에 불과합니다.
선생님은 또한 한국미술사 분야에도 불후의 명작들을 발표하신 바 있습니다.
선생님이 학문을 대하시는 자세가 철저하기로는 남다른 면이 있으셨습니다.
방대한 자료의 검색과 객관적인 고증에 입각하시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과작 (寡作) 의 연유입니다.
선생님이 가신 후 저희 후학들은 학자로서의 선생님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들 후학들은 남기신 가르침을 더 천착하여 '동주학 (東洲學)' 의 전통을 계승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金容九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