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그림’ 같은 음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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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 김희성(48)씨의 독주회에 이종목(52) 이화여대 미술학부 교수가 찾아왔다. 이씨는 “오르간의 거대함에 반했다”며 김씨를 자신의 전시회에 초대했다. 화가는 음악의 규모에 반했고, 음악가는 그림의 생명력에 놀랐다. “동양화가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는 것이 김씨의 기억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영화 ‘취화선’의 그림 자문을 맡았던 한국화가와 가장 우람한 서양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가 예술로 통했다.

영상이 함께하는 김희성(中) 파이프 오르간 독주회의 무대 가상도(작은 사진. 하동환 중앙대 교수 제공). 작곡가 진은숙(맨 오른쪽)도 음악과 영상의 만남을 실험한다. [중앙포토]


19세기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곡가 무소르그스키는 친구였던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전을 다녀온 뒤 영감을 얻었다. 음악으로 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린 작품이 ‘전람회의 그림’이다. 김희성씨가 21일 여는 독주회를 위해 이종목 교수에게 그림을 부탁한 배경이다. 김씨가 ‘전람회의 그림’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동안 수묵화 영상이 무대 위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의 하동환 교수가 그림을 이용해 만든 영상물이다. “리듬에 맞춰 영상이 같이 뛰기도 하고, 음악의 감정에 따라 그림이 변형되기도 한다”는 것이 하교수의 설명. 김씨는 “ 음악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장르를 뛰어넘는 예술가들의 영감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음악회를 소개했다.

◆또 하나의 영상=김씨의 음악회가 열리는 21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은 ‘동시 상영관’이 된다. ‘전람회의 그림’이 연주되는 대극장 옆 세종체임버홀에서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48)씨가 고른 영상물이 음악과 함께 상영되는 것이다. 현대 작곡가의 음악을 소개하는 ‘아르스 노바(Ars Nova)’ 시리즈에서다.

모든 프로그램이 20세기 이후의 작품이지만 단 한 곡이 16세기 작곡가 조반니 가브리엘레의 것이다. ‘라 스피리타타(열정)’.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을 혁신한 작품이다. 진씨는 이 작품과 함께 짧은 영상물 한 편을 상영한다. 컴퓨터 아티스트 릴리안 슈바르츠(82)가 가브리엘레의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다.

진씨는 “바로크 시대와 현대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청중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해설을 붙였다. 공연은 현대 음악가들이 바로크 음악을 인용하거나 비틀어 만든 작품들로 이어진다. 21일과 24일 두번의 연주회로 구성된 ‘아르스 노바’ 시리즈는 진씨가 “시각적 환상을 표현하는 음악”이라고 소개한 관현악 곡 ‘로카나’로 끝난다. 설치미술 작가 울라프 엘리아손이 빛을 이용해 만든 작품을 진씨가 본 후 만든 음악이다. 음악과 시각이라는 두 재료에 대한 음악가들의 시도가 이달 공연장에서 이어지는 셈이다.

김호정 기자

▶ 김희성 파이프 오르간 독주회=21일 오후7시30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21일 오후7시30분 서울 세종로 세종체임버홀/24일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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