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선 대대장의 정치 언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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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전방 방위를 맡은 부대장이 느닷없이 서울시내 한복판 호텔에 나타나 한 후보 아들의 병역시비가 일성장병의 사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된다는 요지의 시국선언문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그는 사전에 두 야당을 오가며 사후거취 문제와 변론까지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경제위기에 대선까지 겹친 비상한 시기에 전선을 책임진 부대장이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군의 정치적 엄정중립을 깨뜨렸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사안이다.

한 후보 아들의 병역시비가 군 사기를 저하시킨다면 부대장으로서는 부대원들에게 정치적 엄정중립을 역설하고 병사 개개인의 투표행위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게 바른 길임을 설득했어야 옳다.

그러나 부대장 자신이 앞장서 군의 사기와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짓을 저질렀으니 국민들은 국방마저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어떤 정당은 예비역 장성들을 줄줄이 입당시키면서 보수적 색깔을 입히는 전략을 펴는가 하면 또 어떤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은 특정정당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물론 예비역 장성들의 정치적 지지나 정당활동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당들이 무분별하게 예비역 장성들을 정당홍보의 들러리로 앞세우는 풍조가 만연하니 일선 부대장마저 철책경계부대를 뛰쳐나와 시국선언을 하는 망동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당들은 군을 선동하거나 정치공작의 대상으로 삼는 의혹을 결코 남겨서는 안된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는 군의 당위고 의무다.

군의 사기나 위신을 허무는 작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군의 철저한 정신무장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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