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덕적 해이 심각한 신용보증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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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형제가 운영하는 동일 기업에 대해 형식적인 조사만 하고 형과 아우에게 각각 신용보증을 해 주었다가 16억원을 날렸다. 사장이 회사를 정리하고 외국으로 떠난 158개 기업에도 무턱대고 보증을 연장해 주다 395억원을 떼였다. 부패방지위원회가 4개월 동안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지역보증재단을 조사한 결과 적발된 사례들이다. 지난해 신용보증기관들이 대신 물어준(대위변제) 돈만 3조4913억원이나 됐다.

신용보증기관은 중소기업에는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신용보증을 통해 금융 대출을 지원하는 공적 특수법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용보증기관들도 부도나 경기위축 등에 따른 사고 위험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위변제액이 지난 4년간 해마다 급증하고, 보증사고율도 4%대에서 6%를 훌쩍 넘긴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정부가 국민 혈세로 메워준 출연금만 1조원이 넘었다.

신용보증 급증에는 외환위기에다 내수경기 악화라는 특수성도 작용했다.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신용보증 문턱을 더 낮춰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신용보증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9%로 미국(0.4%)이나 대만(2%)보다 지나치게 높다. 도태돼야 할 한계 기업까지 신용보증에 기생해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다 만성적자인 신용보증기관들이 매년 10% 넘게 인건비를 올리고, 자회사를 마구 만들어 낙하산 인사를 일삼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지금은 보증제도를 일시에 대수술하기보다 연착륙이 필요한 시점이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확실한 사후관리를 통해 신용보증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직원들이 업체와 유착하거나 재량권을 남용할 소지부터 없애야 한다. 같은 직원이 담당하는 신용조사와 보증심사를 분리하고, 심사과정에서 경영자의 기업관.위기관리능력 등 주관적인 판단사항을 최소화해야 한다. 부방위뿐 아니라 감사원.재경부까지 나서 도덕적 해이부터 근절하고 엇비슷한 신용보증기관들을 통폐합하는 등 시스템도 대폭 손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