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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보도, ‘전쟁’은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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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야구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과 김연아의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우승은 경제 한파로 지쳐 있는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이 둘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도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스포츠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고 이미지가 개선되면서 수출 및 외국인 투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낭보를 접하며 스포츠 기사가 대중에게, 나아가서는 국가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공교롭게도 WBC 결승전과 피겨스케이팅이 연이어 한·일전으로 진행되다 보니 더 흥미진진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고조된 응원 열기를 너무 여과 없이 반영한 탓이었을까. ‘도쿄대첩’ ‘봉중근 의사’ 등 호전적이고 강경한 문구들이 연일 신문을 채워 흡사 전쟁 상황을 방불케 했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으로 특별한 경쟁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전한 수준의 경쟁의식은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고, 활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기를 전쟁 상황으로 몰아가며 필요 이상으로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성숙한 스포츠 강국의 태도라 할 수 없고, 스포츠 정신에도 위배된다. 이번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이후 ‘신발 투척’ 루머 등을 통해 일본 네티즌들의 반한 감정이 촉발되었던 것처럼 경기에서 승리를 하고도 오히려 국가 이미지를 흐리게 될 수도 있다. 반면, 성숙한 스포츠 정신이 뒷받침된 진검승부는 국가 간 선린관계 형성에 효과적인 계기가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3, 4위전 당시 한국은 터키에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승리를 축하했다. 경기 후 어깨동무를 하며 우정을 나누는 선수들의 모습은 세계인들을 감동시켰고, 특히 터키인들에게는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비록 경기에서는 졌지만 국가 브랜드 측면에서는 굉장한 소득을 얻었던 것이다.

며칠 전 남한과 북한이 대결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역시 같은 아쉬움을 남겼다. ‘붉은 악마’들의 열정적인 응원 한쪽으로, 한반도기 몇 장으로나마 한민족으로서의 성의와 격려를 보였다면 훨씬 훈훈한 경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요즘처럼 남북한 관계가 경직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친목의 기회가 돼 주었을지 모른다. 스포츠를 통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일, 그 중심에는 품위 있는 언론의 역할이 자리한다. 선정적인 보도로 대결심리를 부추기기보다는 초연하고 객관적인 입장으로 진실을 전달하고 성숙한 대응을 촉구할 수 있는 ‘사회의 목탁’다운 언론을 기대해 본다. 흔히 우려하는 인터넷 시대 신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론지로서의 돌파구는 바로 이러한 품위와 한 수 앞서기가 아니겠는가.

구삼열 서울 관광마케팅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