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잊혀진 서해교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김창우 디지털뉴스센터 기자

월드컵의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었던 2002년 6월 29일. 대구에서 한국-터키의 3, 4위전 경기가 벌어진 이날 서해 연평도 북쪽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는 북한의 기습 포격을 받은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침몰했다.

정장 윤용하 소령 등 해군 장병 6명이 숨지고 19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당시 참수리 357호는 세 발의 85mm 포탄과 수많은 총알을 맞고도 고장 난 40mm 주포를 수동으로 조작하며 싸웠다. 20mm 벌컨포를 쏘던 조천형 중사와 황도현 중사는 전사할 때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41일 만에 인양된 배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상국 중사는 옆구리와 등에 관통상을 입고도 조타실의 방향타를 끝까지 잡고 있었다.

2년 만인 29일 오전 11시30분.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내 서해교전 제막비 앞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문정일 해군 참모총장과 유가족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정부의 추모행사는 이것이 전부다.

지난해 1주기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던 네티즌 중심의 추모식도 올해에는 없었다.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는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월부터 추모제를 추진해온 해군 예비역 단체로부터 지난 10일 '광화문 추모식이 어렵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에 반해 다음달 27일 미국 매사추세츠 한국전쟁 참전기념탑 건립위원회가 추모행사를 한다며 비행기 표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김씨는 "솔직히 한국이 싫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 나라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의 한 민중노래 사이트에서는 이라크에서 숨진 김선일씨를 추모하기 위한 '제망부가'가 인기다. "더러운 힘에 무릎 꿇은 조국이 그대를 버렸다 해도, 용서하시라 못난 우리를"이라고 노래한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2년 전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여섯 용사들을 우리는 과연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김창우 디지털뉴스센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