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최고경영자 집중 육성나서…다양한 '경영자수업'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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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로 경영자의 책임.자질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차세대 최고경영자 (CEO) 후보들을 조기에 뽑아 체계적으로 키우려는 그룹들이 늘고 있다.

선경.LG.일진그룹등은 기업의 흥망이 무엇보다 경영자에 달려있다고 보고 미국 대기업들처럼 미리 CEO후보를 뽑아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고 있다.

또 산내들 그룹등은 이를 새로 도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최고경영자 후보의 체계적인 육성과정이 없었고 최고경영자 선임 사실조차 주주총회 직전에 갑자기 통보해 온 그동안의 관행과는 사뭇 달라진 풍조이다.

중견 일진그룹은 지난 15일 과장급 가운데 43명을 미래 최고경영자 후보 (FTM:Future TopManagement Junior) 로 최종선발하고 22일부터 격주로 토요일마다 5시간씩 '경영자 수업' 에 들어갔다.

그룹은 이들에 대해 생산.영업.자금등 부서를 골고루 돌게해 다기능 (多機能) 을 갖추고 국제경험을 쌓도록 해외 근무 기회도 줄 방침이다.

이 그룹은 지난해부터 임원을 포함한 부장급 이상 13명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실시했으나 조기에 선발할수록 경영 교육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확대했다.

그룹의 황기연 (黃基淵) 기조실장은 "최근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사태를 보고 경영자 조기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해 과장급까지 확대실시키로 했다" 고 말했다.

黃실장은 "이 제도는 철저한 능력주의와 발탁인사를 바탕에 깔고 있어 조직에 충격을 주는 효과도 준다" 며 "경영자 후보를 1년 또는 2년마다 추가로 뽑기 때문에 탈락된 직원들의 사기저하는 크지 않다" 고 말했다.

선경그룹은 지난 94년부터 미래의 경영자후보 양성을 위해 6년차 이상 부장과 임원등 7백50명을 대상으로 임원육성제도 (EMD:Executive Management Development System) 를 시행한데 이어 지난해 11월부터 이를 사원급까지 확대했다.

선경그룹은 6년차 이상 모든 부장 및 임원에게 이 제도를 적용하며 해외 교육기관 연수와 업무와 관련 없는 해외 프로젝트 등을 수행해 보도록 하고 있다.

또 신참부장 이하 직원의 경우에는 능력이 뛰어난 직원들을 조기에 발굴하면서도 이를 공개하지는 않고 집중 육성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LG화학도 지난해부터 장기적으로 경영자로 성장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된 대리급 이상 부장까지를 대상으로 'CEO후계자 풀 (Pool)' 과 '리더 풀 (Pool)' 을 운영, '리더 풀' 가운데서 'CEO후계자' 를 선발하고 있다.

'리더 풀' 등에 뽑히면 교육기회와 직무경험을 쌓는 한편 직속상사.최고경영팀.인재개발팀등 3개 부문으로부터 집중적인 관찰.평가를 받게 된다.

이 제도의 단점은 경영자 후보로 뽑히지 못한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과 여기에 선발되기 위한 지나친 경쟁으로 부서간 업무협조에 마찰이 생길 수 있는 점등이다.

한편 산내들그룹은 입사한지 일정기간이 지난 직원들을 대상으로 경영자후보를 미리 뽑아 순환 보직을 시키며 임원회의에도 참여시키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미 GE사의 잭 웰치 회장은 81년 취임에 앞서 75년 차기 CEO로 결정돼 핵심부서에서 경험을 쌓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우광 수석연구원은 "연공서열과 평등주의로는 뛰어난 경영자를 키우기 어렵다" 며 "우수한 리더가 상당기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젊을때 CEO후보들을 임명하는 게 좋다" 고 말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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