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내빈 거래소 기업, 매출 24% 늘고 순익은 반 토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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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000원어치를 팔아 남긴 돈이 61원. 여기에서 이자 등 영업외 비용을 제하면 거의 반토막인 33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12월 결산법인·금융업 제외)들의 지난해 성적표다. 매출이 전년보다 크게 늘며 덩치는 커졌다. 영업이익은 다소 줄었지만 악화된 여건을 감안하면 장사는 그런대로 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실물경기가 급랭하면서 적자로 돌아선 기업이 속출했다. 전체적으로 뭉뚱그려 보면 ‘외화내빈(外華內貧)’인 셈이다.

3일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가 발표한 12월 결산법인의 2008년 영업실적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563개 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878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에 비해 23.7% 늘었다. 반면 영업이익은 56조3121억원으로 2.11% 줄었다. 순이익은 31조9839억원으로 무려 40.9%나 급감했다. 금융업을 제외한 상장사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도 6.1%로 전년의 7%에서 0.9%포인트 줄었다. 매출액 순이익률은 전년의 6.7%에서 3.3%로 더 낮아졌다. 1000원어치를 팔았을 때 최종적으로 67원이 남던 것이 33원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적자를 낸 기업의 비율은 16.9%에서 28.4%로 급증했다.

코스닥 상장 기업(878개 사)의 경우 매출(18.4%)은 물론 영업이익(22.3%)도 전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순이익은 1조315억원 흑자에서 1조8029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앞에서 남기고 뒤에선 밑진 것이다. 이처럼 실속 없는 장사를 한 데는 역시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이 컸다. 상반기에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이 큰 부담이었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효과는 기업에 따라 달리 나타났다. 즉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득을 본 기업이 있는 반면, 외화부채와 파생상품 탓에 손실을 입은 곳도 많았다. 예를 들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플랜트 제조업체인 성진지오텍은 지난해 1910억원 적자를 냈다.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 등으로 본 파생손실(평가손 포함)만 4000억원에 달했다. 금호타이어는 36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환차손과 지분법 손실로 2003억원의 적자를 봤다.


전반적인 재무구조도 전년에 비해 나빠졌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금융업 제외)의 부채비율은 99.8%로 1년 새 19.2%포인트 상승했다. 코스닥 상장사도 20%포인트 급증한 91.3%를 나타냈다.

10대 그룹도 전체적으로 비슷한 추세였으나 그룹별로는 명암이 엇갈렸다. 이들의 매출은 전년에 비해 18.8% 증가했지만 순익은 거꾸로 18.9% 감소했다. 그룹별로는 현대중공업·포스코·현대자동차의 순익은 증가했고, SK·GS·롯데·삼성·LG는 줄었다. 이에 비해 포스코는 영업이익에서 삼성을 추월하며 수위를 기록했다.

한편 지난해 기업 실적에 영향을 준 가장 큰 변수가 원화 가치였다면 올해는 경기 회복 여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우증권 조승빈 연구원은 “지난해 부진했던 정보기술(IT)이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어 업종별로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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