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엔 해녀만 있다? 경력 45년 해남은 몰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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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문정석씨가 2일 제주시 애월읍 바닷가에서 물질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오른손엔 태왁(물에 띄우는 뒤웅박)과 망사리가, 왼손엔 호신용 작살이 들려 있다. 그는 “환경오염 때문인지 전복·소라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프리랜서 주현식]

 2일 오후 3시 제주시 애월읍 바닷가. 주민 문정석(62)씨가 물에 뛰어들었다. 한번 숨을 몰아 쉬고 자맥질을 하자 그의 손에 해삼이 들려 나왔다. “이 정도는 일도 아니우다(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문씨는 제주에서 ‘물질 하는 남자’, 이른바 ‘해남’(海男)이다. 물질 경력 45년의 문씨는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수 있다”면서도 “환경 오염 때문인지 바닷속에 해초가 눈에 띄게 줄고 전복·소라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제주에는 5명의 해남이 있다. 하지만 문씨를 제외하면 몇 년 일을 하다 그만둬 이름뿐이거나 아직 물질 경력이 모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질하는 몇몇 해남도 그에게 배운 까닭에 그는 ‘제주 해남 1호’로 불린다. 문씨는 “일본에선 물질 하는 사람이 대부분 남자인데 우리나라에선 여자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물질에 남녀가 따로 있을 게 없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만 17세이던 1964년 중학교를 마친 뒤 물질을 시작했다. 4남3녀 중 둘째 아들인 그는 부친의 정미소가 59년 태풍 사라호로 형체도 없이 사라진 뒤 ‘갓잠수’ 일로 벌이에 나섰다. “물질 한번 하고 나오면 전복 10㎏을 들고 나왔죠. 그걸로 좁쌀 두 되를 바꿔 죽을 쑤면서 형제들이 연명했죠.”

“돈 벌겠다”는 욕심에 70년대 중반 제주에서 속칭 ‘머구리(잠수기선)’라는 배를 탔다. 배에 있는 산소통에 호스를 매달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해산물을 캤다. 한번 물에 들어가면 1~2시간은 예사였다. 숨을 참고 물속을 들락거리는 해녀 물질과 차원이 다른 고된 일이었다.

작업 시간이 길어 마구잡이로 해산물을 캐다 보니 전복·소라의 씨가 마른다는 항의가 많아 6년 만에 중단했다. 결국 다시 할 수 있는 일은 맨몸으로 뛰어드는 지금의 물질이었다. 81년 해녀 김순녀(62)씨와 결혼, ‘물질 부부’가 됐다. "우연히 만났는데 생년월일뿐 아니라 하는 일(물질)마저 똑같아 천생연분이다 싶었지요.”

어촌계장 강창송(68)씨는 “하루는 문씨 부부가 찾아와 남자도 물질을 한다며 어촌계에 가입하겠다고 해 마지못해 받았다”며 “그런데 일을 너무 잘해 ‘남자가 다 잡는다’는 해녀들의 불만이 많아 진땀을 뺐다”고 전했다.

그는 80년대부터 원정 물질에도 나서 ‘상군 해남’이 됐다. 매년 3개월간 전남 여천군 초도에서 물질 벌이를 해왔다. 지금도 여건만 되면 전남 대흑산도와 일본 미에(三重)현 지방까지 수시로 물질 원정을 간다. 해녀들의 ‘질투’도 이젠 옛날 얘기가 됐다. 어촌계 탈의장은 여성이 우선이고, 그는 맨 마지막에 사용한다. 붙임성 좋은 성격에 노래도 잘해 마을의 재주꾼으로 통한다. 마을 최고령 해녀 장재출(78)씨는 “정석이(문씨)가 없으면 재미가 없지. 우리 동네 보물”이라고 칭찬한다.

그는 오로지 ‘물질’만으로 작은 집 한 채도 마련하고, 제주시 요지의 다세대 주택도 샀다. “몸을 놀리지 않으면 아프다”며 마을에 쪽파·부추를 심는 밭 5000㎡도 있다. 2남1녀를 모두 대학에 보냈다. 경제적 여유가 생겼건만 문씨 부부는 요즘도 하루 6~8시간씩 한 달에 10~15일 정도는 물질을 한다. “둘(부부)이 월 200만~300만원은 번다”고 그는 귀띔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사진=프리랜서 주현식

◆상군(上軍)=얼마나 바닷속 깊이 들어가 해산물을 잘 캐느냐는 기량에 따라 부르는 해녀들의 호칭. 나이와 무관하다. 기량이 뛰어난 해녀가 대상군·상군으로, 야트막한 해안에서 물질하는 해녀를 ‘갓잠수’로, 한철 때만 물질하는 해녀를 ‘고망잠수’라고 부른다. 나이든 해녀 가운데는 어릴 적 물질 기량이 뛰어난 덕에 얻은 ‘애기상군’이란 호칭을 훈장처럼 자랑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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