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신뢰 얻으려면 국어 실력부터 갖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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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대로 된 치안 활동을 펴려면 국어실력부터 갖춰야 한다.”

조용연(사진) 울산경찰청장이 지난달 12일 부임한 이래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다. 110만 울산시민의 치안 책임자가 갖가지 범죄·사건 해결에도 바쁜 휘하 2500여 경찰에게 난데없이 국어공부를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조 청장은 우선 울산지방경찰청에 ‘국어능력향상과정’을 개설했다. 지방경찰학교 교육과정의 하나로 설치한 이 과정은 서울대 국문과 교수들이 이끌고 있는 한국언어문화연구원의 연구원들이 꼬박 사흘간 국어만 가르친다. 5,6,11월 3차례 진행한다. 이 때문에 미리 날짜가 잡혀있던 사격훈련 일정이 뒤로 밀려나기도 했다. 또 국어 능력향상과정을 거친 경찰에게는 한국언어문화연구원이 주관하는 ‘국어능력인증시험’을 반드시 치르도록 했다.

경찰에 대한 조 청장의 국어공부 불지피기는 울산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충남경찰청장에 부임하면서 그곳에도 같은 과정을 개설, 3년 연속 수강신청자가 가장 많은 과목으로 자리잡았다.

충남경찰청 송경애 경정(47)은 “국어향상과정을 이수하고도 국어능력인증시험에서 최하위 등급인 5급을 겨우 땄다”며 “하지만 그렇게 배운 국어실력 덕분에 대화나 방대한 서류에서 핵심 논점을 뽑아내고 기획서를 만들만큼 확 달라졌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도 이에 호응해 국어능력인증시험을 통과한 경찰관에게 성적에 따라 승진시 0.2~0.5점의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조만간 시행할 예정이다.

다음은 조용연 울산경찰청장과의 일문일답.

-몇십년 한글을 쓰며 불편없이 살아 온 성인, 그것도 바쁜 경찰관에게 새삼 국어공부라니.

“맞춤법 틀린 e-메일 하나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개념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앞뒤 안맞는 문장 때문에 논리도 없이 대충 사는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던가. 이런게 경찰의 대민활동 현장에서 튀어 나오면 시민들에게 얕잡아 보여 제대로 협조를 얻을 수가 없고, 검찰·법원으로 가는 공문서에 이런 게 잦으면 자질을 의심받아 수사권독립 요구도 제대로 할수 없게 된다.”

-국어교육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2006년 경찰청 보안국에 근무할 때 동료직원 수십명과 함께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응시해 보고 깜짝 놀랐다. 990점 만점에 최고가 600몇점이었고, 나도 낙제점인 400점대였다. 나머지 대부분은 100점대였고…. ”

-경찰내 국어공부 분위기는.

“아직 수강신청 기간이 아닌데도 하루 10통 이상의 문의전화가 걸려 온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초 80명 모집예정이었는데 120명으로 늘려야 할 것 같다.울산에 앞서 2년전 시작한 충남의 경우 지방경찰학교 34개 과정중 국어능력향상과정이 3년연속으로 가장 빨리 마감됐다.“

-뭘 배우나.

“우리 시절 제대로 못배운 논술에 주안점을 둔다. 좋은 글 나쁜 글 사례연구, 어휘·문장 다듬기, 언어 예절, 논리 전개 요령, 국어능력인증시험 준비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전공이 국어국문학인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이다. 경무·기획업무를 주로 맡다 보니 논리·설득력이 국어능력에 좌우된다는 걸 더 절감했을 뿐이다. 시집을 내기도 했다.”

-국어 잘 하는 경찰은 뭐가 다를까.

“조서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 테니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경찰조서는 사법처리 절차의 출발점으로 검찰·법원의 사건에 대한 첫 인상을 좌우한다. 또 바른 언어예절과 설득력으로 대민관계를 훨씬 원활히 끌어갈 것이다.”

-국어 잘하는 경찰에 인센티브는.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시절에 국어능력인증시험 성적에 따라 승진 가산점을 주는 개선안 틀을 만들어놨다. 조만간 시행될 것으로 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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