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63> 박지성 냄새가 물씬 나는 김치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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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김치우(26·FC 서울)에게서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냄새가 난다.”

맞는 말이다. 왜소한 체격으로 주목 받지 못한 청소년 시절부터, 눈썰미 있는 지도자에게 발탁돼 공격 본능을 마음껏 펼치는 현재까지. 그리고 묵묵히 할 일만 하는 성격까지 둘은 정말 많이 닮았다.

풍생중·고 시절 김치우는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다. 조관섭 풍생고 감독은 “치우는 작고 조용했지만 매우 똑똑하고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였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몇몇 대학에 김치우를 추천했지만 대학 감독들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중앙대 조정호 감독이 받아줘 그나마 수도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수원공고 3학년 박지성이 왜소한 체격 때문에 갈 곳이 없어 축구를 그만둘 뻔했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대학에 간 김치우는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수비수였던 그는 미드필더로 올라서면서 공격에도 눈을 떴다. 조정호 감독이 당시 청소년대표팀 박성화 감독에게 추천해 김치우는 1학년 때 U-19 청소년대표팀에 뽑혔다. 명지대 1학년 박지성이 김희태 감독의 추천으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뽑히면서 축구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맞았던 스토리와 흡사하다.

외아들 김치우는 중3 때 어머니를 잃고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면서 김치우를 점찍었고, 그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진출했다. 어머니 유해를 모신 인천에서 뛰면서 살림에도 보탬이 될 수 있어서 기뻤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해 뛰었고, 기량도 부쩍 늘었다. 그런데 인천 구단이 2005년 그를 세르비아의 파르티잔 구단으로 6개월 임대를 보냈다. 그는 “원치 않는 곳에 준비 없이 가서 되돌아보기 싫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힘 좋고 터프한 동구 선수들과 부딪치면서 근성과 파워를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또다시 인천이 그를 전남 드래곤즈로 트레이드했다. 안 가겠다며 보름을 버티다 내려간 광양에는 ‘진돗개’ 허정무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웃으며 김치우를 받아준 허 감독은 그의 공격 재능을 일깨웠다. 김치우는 지난해 FC 서울의 러브콜을 받아 웃으며 서울로 올라왔고, 허 감독은 그를 대표팀에 뽑았다.

김치우는 1일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북한전에서 프리킥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 축구 최고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A매치 2경기 연속 골을 넣었고, 올해 소속팀에서도 벌써 4골을 기록 중이다.

김치우(1m75㎝, 69㎏)는 박지성(1m78㎝,73㎏)을 “가장 닮고 싶은 선배”라고 말한다. 그런데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선배의 자리를 그가 위협하고 있다. 북한전 김치우가 교체 투입되자 박지성은 왼쪽 미드필더 자리를 그에게 넘겨주고 중앙으로 옮겼다. 김치우는 박지성과 ‘경쟁-공존’의 시소를 타고 있다.

정영재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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