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실정리 외국사례…핀란드, 부실 금융기관 과감히 합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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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결국 IMF의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는 기업의 잇따른 도산과 이에 따른 금융대출의 부실화에서 비롯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금융기관의 부실대출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90년대 들어서도 북유럽 3국이 부실채권으로 인한 심각한 금융.외환위기를 겪었고, 일본도 경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부동산등 담보가치의 폭락에 따른 대출 부실화로 아직까지 경제회생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선진 금융기법을 자랑하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80년대 미국 8위의 콘티넨털 일리노이은행이 지급불능상황에 이르고 수많은 부실 저축대부조합들이 강제로 정리되는등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들 국가들이 이같은 금융부실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어떻게 타개했는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 (他山之石) 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북유럽중 우리와 상황이 가장 비슷했던 핀란드의 사례를 집중 분석해 봤다.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 북구 (北歐) 3국은 90년대초 심각한 금융위기를 경험했다.

특히 핀란드의 경우 위기 발생배경이나 전개과정이 우리의 경우와 유사한 점이 많아 위기수습에 나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핀란드의 금융위기 극복 사례를 중점연구한 한국은행 브뤼셀 사무소의 정웅진 (丁雄鎭) 소장은 "우리나라 금융.외환시장이 겪고 있는 현재의 위기는 90년대초 핀란드의 상황과 흡사하다" 면서 "단기적 대응책과 함께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상각.부실금융기관 통폐합 등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한 근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핀란드의 금융위기는 지난 89년 최대의 저축은행인 스콥방크의 지급불능사태가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

군소 저축은행에 대해 중앙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던 스콥방크가 비금융업종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대하면서 그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대량 예금인출사태를 야기한 것. 이를 계기로 80년대 중반 이후의 '거품경제' 에 가려져 있던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문제가 전면에 불거져 나왔다.

여기에 옛소련 붕괴에 따라 경기가 급랭하면서 기업부도가 증가하고 이는 환율불안.금리상승 등으로 연결돼 핀란드 금융기관들에 대한 대외신용도가 최악의 상태로 악화되는 등 금융시스템 전체가 위기상황에 빠지게 됐다.

핀란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배경에도 유사점이 많다.

80년대 초반부터 추진된 핀란드 정부의 금융자유화 및 자본자유화 조치로 금융기관의 자금조달과 운용의 자율성이 크게 확대된 가운데 금융기관들이 부동산·레저·소매업 등 민간의 소비조장적 차입수요에 부응, 방만하게 자산을 운용한 점이 위기의 원인 (遠因) 이 됐다.

또 핀란드 마르카화의 환율이 복수통화바스켓 제도에 의해 사실상 준 (準) 고정상태로 운용된 결과 금융기관들이 별다른 환리스크 없이 해외차입을 크게 늘릴 수 있었던 점도 부실채권 확대의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위기가 절정에 달한 92년말 예금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은 민간대출금의 8.7%에 이르는 4백억마르카 (약80억달러) 까지 올라갔다.

스콥방크를 핀란드 중앙은행이 인수, 경영권을 장악하고 증자와 경영진 전면교체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기관의 연쇄도산 위기는 일단 막았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구조적 문제점으로 등장,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계속 위협하자 핀란드 정부는 92년 1월 총리실 직속으로 정부·중앙은행·은행감독원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설치, 근본대책 수립을 주도하도록 했다.

특별위원회는 ▶금융기관 증자 ▶정부보증기금을 통한 부실금융기관 정리 ▶금융감독체계의 개편을 대책으로 권고했고 이후 핀란드 정부의 금융위기 극복노력은 이 세가지를 축으로 추진됐다.

금융기관 증자를 위한 특별수단으로 우선주 제도를 도입, 금융기관 전체로 총 80억마르카의 자본금이 증액됐다.

또 5백억마르카 규모의 정부출연 기금으로 설립한 정부보증기금은 41개 부실 저축은행을 단일은행으로 합병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은행감독원을 확대개편한 금융감독원을 설립, 중앙은행과 함께 의회의 관할기관으로 만들어 금융위기를 조기 감지해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높였다.

그 결과 지난해말 예금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처음으로 1백억마르카 아래로 내려갔다.

정부가 출연한 정부보증기금이 금융산업개편의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회복한 점이 핀란드 사례의 특징인 셈이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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