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선후보 TV토론에서도 후보검증이란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실히 느꼈다.
질문자들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토론에 임해도 후보 역시 철저한 답변준비로 무슨 질문을 해도 잘 피해 나갔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후보를 검증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 (至難) 한 일인가 새삼 절감했다.
사실 국민들이 꼭 알고 싶어하는 후보 개인의 여러 의혹과 약점을 단지 한두 시간의 토론으로 밝혀 내기란 불가능하다.
비자금문제만 해도 그렇다.
수십명의 조사관이 동원돼 수사권과 예산의 뒷받침을 받아 몇 개월이 걸려도 진상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서너명이 둘러앉아 몇 마디 질문을 통해 어떻게 진실을 밝힐 수 있겠는가.
앞으로 TV토론을 몇 차례 더 한다 해도 이런 문제는 비슷한 추궁에 똑같은 해명이라는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TV토론이라 하면 먼저 이런 개인적인 약점과 의혹이 집중 조명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런 문제가 시청자의 감정을 가장 쉽게 사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후보에게 이런 약점, 저런 의혹이 있다는 얘기처럼 관심이 가는 문제도 없다.
또한 복잡한 판단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 얘기들은 곧 유권자의 감정에 직결돼 '누구는 무엇 때문에 절대 안된다' 는 식으로 비약한다.
이번 토론의 경우만 해도 신상문제를 포함한 의혹에 관한 사항은 팽팽한 긴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경제나 사회문제등 정책분야로 이슈가 옮겨 가면 금방 분위기가 이완된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즉 감정적인 판단과 연결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신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선거가 폭로와 비방전에서 정책대결로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신문이 후보의 정책을 다루면 관심을 갖고 그 지면을 읽는 독자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각 후보의 약점이나 의혹은 이제 부각될 대로 부각됐다.
비자금문제.아들병역 문제.경선불복 문제등 세 후보의 여러 약점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 후보 가운데 누구든 한 명을 뽑을 수밖에 없다.
후보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토론하고 질문을 계속한다 해도 약점이나 의혹의 문제는 진전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이 정도에서 각자의 가슴에 접어 두고 새로운 방향에서 후보를 골라야 한다.
이 문제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소위 네거티브 캠페인의 노예가 된다.
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선거운동이라는 것이 전부 폭로와 비방이었다.
그것이 유권자의 감정을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선거당사자들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제 선거 한 달을 앞두고도 지지율이 떨어질 듯하면 또다시 폭로시리즈로 나가려 한다.
감정적인 판단은 일단 명쾌해 보이나 종합적이거나 지속적일 수 없다.
후보 지지도가 우리처럼 큰 폭으로 흔들리는 이유도 감정적인 대응의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감정은 접어두고 머리로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최상이냐를 판단해야 한다.
비록 가슴에는 못 마땅하고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더라도 머리로 생각해 볼 때 옳은 결론이면 그 판단을 따라야 한다.
머리로의 판단은 후보자의 번드르한 말이나 약속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말과 약속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
대통령선거는 재치문답을 잘하는 인물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특히 모든 후보가 좋은 것은 모두 하겠다는 풍토에서 말은 의미가 없다.
말보다는 그 사람의 지금까지 행동이 어떠했는가를 봐야 한다.
그의 행동에 신뢰성이 없으면 아무리 토론을 잘해도 빈 수레 소리에 불과하다.
머리로의 판단은 후보의 주변을 보는 것이다.
친구를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후보 주변인물이 과연 나라를 안심하고 맡길 정도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주변인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냐를 보는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각 후보에 대해 '예측이 가능한 정치를 펼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 속에 특정후보가 당선됐을 때 대개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도대체 집권후 어떻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 후보는 고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이제 모두 가슴은 덮고 냉철하게 머리로만 판단하자.
문창극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