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흡연' 밀실에서 광장으로 공간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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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그대, 담배를 피우지 마. 담배연기 싫어. 멋있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건강에도 안 좋은 걸 왜 자꾸 피우시나. ' 여자친구의 흡연을 거의 절규하듯 뜯어 말렸던 그룹 '건아들' 의 '금연' 이란 노래를 기억하는지. 그 후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건아들의 절규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로 남고 말았으니. 여성 흡연은 '호불호 (好不好)' '가불가 (可不可)' 를 넘어선 하나의 일상이 된 지 이미 오래. 그럼 10년전과 달라진 건 과연 뭘까. 직장인 김모 (25.여) 씨의 며칠전 목격담. "초저녁 대학로의 대표적 약속장소인 할아버지상을 세워 놓은 패스트푸드점 앞이었다.

멋진 바바리 차림의 두 젊은 여성이 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활보하더라. 더 놀라운 건 - .수없이 모여 있던 사람 중 나처럼 그들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없더라. "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 대학원에 다니는 동생에게 얘기를 했다.

역시 시큰둥한 반응. "요즘엔 담배를 물고 교문에 들어서는 애들도 있는 걸. " 승용차 안이나 기타 사적인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그야말로 자유다.

요즘들어 여성흡연을 인정하는 사회의 시도가 계속되는 건 애연가에게 퍽 다행이다.

어느 백화점이 마련한 여직원 전용 흡연실. 여성전용 담배 보관함을 마련한 약삭빠른 카페도 있다지 아마. 그런데 왜 그들이 과방.동아리방에서 교내 벤치나 휴게실로, 카페나 호프에서 거리로 나오고 있는 걸까. 예전보다 한결 누그러진 사회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실정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남녀 따지기를 좋아하는 우리 사회의 보수성이 어디 쉽게 깨질라고. PC통신 토론방에 한번 들어가 보라. 의견수가 수백건을 넘어서는 여성흡연에 대한 결론 없는 찬반 양론은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계속 됐다.

아마 내년에도 그럴테지. 여기서 짚고 넘어갈 여성흡연에 대한 편견 하나. '지붕이 없는 곳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는 건 경범죄에 걸린다' - 흡연에 대한 처벌조항은 금연장소에서 흡연시 처벌을 받는 것 외엔 없다.

고로 흡연 여성은 범법자가 아니다.

'그렇게 떳떳하면 길거리에서 마구 피지, 왜' - 죄의식 때문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당당함' 으로 인해 겪게 될지도 모를 '봉변' 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남자들의 경우도 길에서 담배를 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어디 길이 재떨이인가 뭐. 10년전 여성운전자가 그랬듯이 '구경거리' 가 오늘의 일상으로 바뀐 것은 많다.

과거에 눈쌀을 찌푸리게 했던 것들도 이제는 꽤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남자의 귀고리, 형형색색의 머리모양, 적극적인 애정표현 등등. 그러니 새삼스레 '남자가' '여자가' 란 이유로 제재를 가한다고 해서 통제가 될까. 담배는 하나의 기호식품이니 흡연자.비흡연자로 나눌지언정 성 (性)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의 대상은 아니라는 게 여성 흡연자들의 공통된 항변. 하긴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는 할머니를 보고 욕하는 남자는 하나도 없으니 흡연은 성인 남성과 노년층만의 특권인가.

그게 아니라면 과연 누가 젊은 여성 흡연자에게 돌을 던지랴.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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