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청학동의 실체 추적, '지리산 옹고집들' 의 대표 성락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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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리산속의 이상향 (理想鄕) '청학동' 은 정말 있는가, 있다면 어디일까. 중국동진 (東晉) 시대의 시인 도연명 (陶淵明) 의 무릉도원 (武陵桃源) 처럼 우리 조상들이 지리산 자락 어느 곳엔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믿어온 '청학동' 의 실체를 추적하는 작업이 한 산악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허황된 꿈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청학동' 을 지리산연구모임인 '지리산 옹고집들' 의 대표 성락건 (成樂建.51) 씨가 각종 옛 문헌을 토대로 10여년동안 추적한 끝에 최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成씨가 찾고 있는 '청학동' 은 도인촌으로 알려진 지금의 청학동 (경남하동군청암면묵계리) 과는 다른 곳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與地勝覽, 1530년 발간) 과 이인로 (李仁老, 1152~1220) 의 파한집 (破閑集) , 무학선사 (無學仙師, 1327~1405) 비기 (秘記) , 김종직 (金宗直, 1431~1492) 의 기행문등에 등장하고 있으며 지도까지 수십장 나돌고 있다.

문헌중 '청학동' 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이인로의 파한집. '사람이 겨우 통하는 좁은 길을 엎드려서 수리 (數里) 쯤 지나 넓게 트인 구역에 들어 가게 된다.

사방이 옥토라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다.

푸른 학이 사는 까닭에 청학동이라 부른다' 고 돼 있다.

'청학동' 을 가장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기록은 무학선사의 청학동결 (靑鶴洞訣) 로 '진주 서쪽 1백47리 되는 곳에 넓고 평탄한 작답 (作畓) 과 돌우물이 있으며 뒤쪽에 석각삼봉 (石角三峯) 이 있다' 는등 24개 항목에 걸쳐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고 있다.

成씨는 이같은 기록과 지도를 근거로 ▶하동군악양면매계리 청학이골▶하동군화개면용강리 불일폭포 주변▶산청군시천면반천리 고운동▶산청군시천면내대리 세석고원▶하동군화개면대성리 덕평고원등 10여곳을 대상으로 확인작업을 벌여 왔다.

成씨는 이 가운데 세석고원이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찾아 헤메던 '청학동' 이라고 믿고 있다.

成씨가 세석고원을 '청학동' 이라고 믿는 근거는 최근 세석고원에 대한 답사에서 50여곳의 집터와 무덤 10개를 찾아 냈으며 무학선사의 청학동결에 나오는 돌우물과 비슷한 우물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成씨는 "지금은 철쭉밭으로 변해 버린 3만여평의 세석고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흔적을 발견했다" 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세석고원 주변의 영신.삼신.촛대봉등 3개의 봉우리가 '석각 삼봉이 있다' 는 부분과 일치하는 점도 成씨의 판단을 거들고 있다.

하지만 成씨는 청학동이 각종 옛 문헌에 나오는 것처럼 신비스런 곳으로 보기는 어렵고 고려말과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탐관오리와 왜구들을 피해 서민들이 지리산 깊은 골짜기로 찾아 들면서 퍼진 이야기로 보고 있다.

成씨는 " '세금도 없고 괴롭히는 사람도 없는 살만한 세상이 지리산 자락에 있다' 는 이야기들이 '청학동' 이라는 이상향을 만들어 낸 것" 이라며 "이같은 소문들이 하나의 민중신앙으로까지 확산된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확인작업은 더 진행돼야 한다" 고 밝혔다.

지리산 = 김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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