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서평]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가지…일상서 찾은 우리문화 고유한 특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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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랠프 린턴 (미국 인류학자) 은 문화란 삶의 양식, 무엇보다도 '조건화된 감정반응' 이라 했다.

수백년, 아니 천억년을 조건화되어 감정반응이 되풀이되는 동안에 어느덧 우리의 몸에 배어 이제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은채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몸짓.표정.삶의 모습들. 김열규 교수는 바로 그 모습을 한국의 전승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지성적 촉각으로 그의 저서 '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가지' (금호문화刊) 속에 담아 우리에게 제시하였다.

그것은 문화탐색이 지금까지 보여온 권력지향성.대물주의.스타주의의 뒤안길에 잊혀져있던 매우 소중한 우리 문화의 응달을 눈여겨본 결과라 했다.

그의 코드 (기호) 는 5부에 각 부마다 셋을 곱한 것, 3×5, 한국인이 즐겨 거룩한 숫자로 여겼다는 홀수의 결합이다.

제1부는 울음.웃음.욕등 인간관계에 관한 것, 제2부는 먹거리 문화로 음식.숟가락.그릇에 흥미롭게도 치마가 숟가락의 넉넉함과 함께 한짝의 코드로 들어와 있고, 제3부는 물.불.소나무라는 자연의 코드, 제4부, 마을.안채 - 안방.숫자라는 코드, 제5부에 이르러 결혼.남자.여자라는 코드로 끝막음하였다.

마치 전자현미경에 나타난 유전자 구조같다고나 할까. 저자의 서술에는 일말의 감상도 없다.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좋고 나쁜 주관적인 가치평가도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논리적인 분석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하면서 우리가 파괴하고 업수이 여겨온 것이 실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음을 일깨워준다.

그의 탐구는 문화기호론 뿐 아니라 고고인류학에, 심지어 정신분석학적 시각을 넘나들고 있다.

그만큼 논란의 여지도 있어 오히려 흥미를 돋우고 있다.

모든 '코드' 의 서술에서 언뜻언뜻 이 한국문화코드가 세계적, 전인류적 원형에 맞닿아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는 있으나 대체로 '한국의' 문화코드라는 고유성에 정착하고 있다.

'마을' 이라는 코드를 읽으면 그러한 전통에의 집착이 절대로 버려서는 안될 한국인의 기품과 지혜와 개성에 대한 절절한 옹호의 표현임을 알게 된다.

'결혼이라는 코드' 에서는 흔히 말하는 융합의 원리보다 갈등의 현상을 부각시켰고 전통혼인풍속의 의미와 여성의 역할을 분석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코드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한국여성에 가해진 '문화적 성폭행' '신부는 꾸어다 놓은 배 (腹)' '여성의 무가치성' '강요된 희생' 에 관한 증언을 접할 때 그것이 분명 현실의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었다할지라도 그것이 한국여성의 전체상이었을까 의심된다.

'성년식은 어머니의 아이에서 아버지의 아이로 옮아가는 것' 이라는 등식의 논리전개는 어딘가 아쉬움을 남기고 민담의 호랑이를 '팔루스' (남근) 라 단정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에 저항을 느끼는 것은 필자의 입장이 다른 탓인지 모른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이러한 코드화 작업은 과연 한국문화의 전체상을 비출 수 있을까. 한국인은 변하고 있고 또한 변해야 한다면, 문화 즉, 조건화된 감정반응을 극복하면서 창조적으로 변하게 하는 원동력, 세계와 함께 호흡하는 인간의 원초적 심성의 패턴은 한국의 문화코드 어디에 숨쉴 수 있을까. 저자는 그러한 물음의 해답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듯 하다.

이부영 원장〈한국 융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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