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불어라 봄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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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소통과 해빙의 외교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오바마는 주요 20개국(G2) 회담을 하루 앞둔 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새로운 핵무기 감축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12월 5일로 시한이 만료되는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을 대체하기 위해서다. 양국 정상은 이 자리에서 7월까지 실무협상 결과를 내도록 시간표까지 확정했을 정도로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바마는 또 7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달라는 메드베데프의 초청도 수락했다.

한편 미국은 지난달 31일 30년 동안 관계를 끊어온 이란과 공식 외교 접촉에 나섰다.

오바마의 ‘해빙 외교’ 뒤에는 나름의 계산이 있다. 부시 전 행정부가 고수한 ‘힘의 외교’를 버리고, 설득을 통한 ‘소프트파워 외교’까지 합친 스마트(smart) 외교로 국제관계를 풀겠다는 뜻이다. 오바마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에 힘을 집중하기 위해서도 러시아·이란과의 긴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AP통신 등 외신이 분석했다.

◆미·러 핵무기 감축 추진=오바마와 메드베데프는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 성명을 통해 “전략 핵무기를 2002년 모스크바에서 합의한 것보다 낮은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 “실무자들에게 7월까지 진척 사항을 보고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START는 냉전시기인 1991년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체결한 협정이다. 양국에 대해 전략 핵탄두를 각각 6000기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양국 간 상호 무기 시찰과 검증도 처음 허용했다. 이후 97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후속 START 협상을 추진했으나 타결되지는 않았다. 이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블라미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은 2002년 만나 향후 10년 동안 핵탄두 수를 1700~2200기 수준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START 협정과 달리 폐기할 무기의 종류를 당사국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이란 해빙 무드=미국과 이란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공식 외교 접촉을 했다. 79년 이란혁명 이후 처음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국제회의에서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의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와 이란의 무하마드 메흐디 아쿤자데 외무차관이 ‘짧았지만 진심 어린’ 만남을 가졌다”며 “두 사람이 연락을 계속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앞서 지난달 20일 “이란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이란은 공식적으로 답하지 않았으나 미국이 주도한 이번 국제회의에 외무차관을 파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번 접촉 때 미국은 클린턴 장관이 이란 정부에 보내는 편지를 ‘직접’ 전하기도 했다. 편지에는 “이란이 구금하고 있거나 이란에서 실종된 미국인 세 명을 구명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미국이 제3국을 통하지 않고 직접 외교 서신을 이란 정부에 전달한 것도 이례적이다.

아직 이란의 공식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아쿤자데 차관은 31일 회동 후 이슬람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과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았으며 이는 우리의 의제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아프간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에서도 그는 아프간에 대한 미군 증파를 강하게 반대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정경민·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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