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에 미국 사형제 폐지 ‘힘 받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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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세계적으로 사형제도를 운용하는 국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가에 의한 제도적 살인’이란 윤리적 비판이 많아지고,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한 의문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사형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오랫동안 형 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된 나라가 많았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과반수가 넘는 주에서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폐지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사형제도 운용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형제 폐지, 세계적 대세=국제사면위원회가 발표한 ‘2008년 사형선고와 집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59개국 가운데 실제로 형을 집행한 국가는 25곳에 불과했다. 세계적으로 최소 8864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실제 집행당한 사형수는 27%인 2390명이었다.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했거나 한국처럼 유지는 하되 10년 넘게 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인 폐지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는 138개국이나 된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도 지난해 사형제를 완전 폐지하면서 ‘사형 없는 나라’ 대열에 합류했다. 50개 주 가운데 36개 주가 사형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사형선고와 집행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중국에선 지난해 1718명이 사형당해 다른 나라의 사형 집행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중국 다음으론 이란(346명)·사우디아라비아(102명)·미국(37명)·파키스탄(36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5개국이 세계 사형 집행자 수의 93%를 차지했다.

◆미국에선 경제위기로 사형 폐지=경제위기가 깊어지면서 사형제를 유지해 온 미국의 일부 주 정부들이 재정 절감 차원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려 한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지난달 25일 보도했다.

사형제가 종신형 등 일반형에 비해 집행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메릴랜드주 ‘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오랜 재판 절차와 변호사 선임료, 특수 감방 운용 등으로 사형 비용은 종신형의 약 세 배에 이른다. 일반 형벌이 건당 110만 달러(약 15억원) 정도 드는 데 반해 사형은 약 300만 달러가 소요된다. 사형수 667명이 수감돼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일반 죄수에 비해 사형수 한 명당 연간 관리 비용이 9만 달러나 더 들어간다. 이런 이유로 뉴멕시코주의 빌 리처드슨 주지사는 지난달 중순 사형제 폐지 법률에 서명했다. 콜로라도주는 사형제를 폐지하고 여기서 절감하는 돈을 1400건의 미해결 살인사건 수사에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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