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노벨상 '씨앗심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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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노벨상 수상은 과학기술계는 물론 우리 국민 모두가 바라는 가장 큰 소망중 하나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지금까지 진지한 논의가 없었던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과기처가 11일 선정 결과를 발표한 '창의적 연구진흥사업' 은 과학기술계 안팎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모방이 아닌 창조력 넘치는 연구로 장차 노벨상감이 될만한 연구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이 사업의 추진방식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 사업의 골자는 독창성 있는 연구계획을 가진 과학자에게 과제당 연간 5억원 안팎의 연구비를 최고 9년까지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의 한 교수는 "연구라는게 원래 성공률이 20%도 못된다.

이제는 우리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세계를 리드할만한 연구테마에 눈을 돌려야 한다" 고 말했다.

다른 나라의 기술을 베끼는 연구방식으로는 노벨상은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기처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상당수 과학자들이 이번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연구자의 '풀 (Pool)' 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이공계 박사학위 소지자는 3만5천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과기처측은 연구과제를 장기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현재 몸담은 대학.연구소를 떠나 다른 연구기관 합류가 가능하고 기존 연구를 중단할 수 있는 인물로 대상을 제한했다.

50세가 넘은 사람 역시 배제했다.

이 사업의 아이디어 자체에 회의를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 지방대 교수는 "창의성 있는 연구라는게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노벨상을 탄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고 지적했다.

연구자 선정과정의 공정성을 문제삼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세계와 어깨를 겨룰만한 연구실적을 평가해줄 전문가들이 국내에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 말했다.

과기처도 한때 국외 전문가에게 평가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다 별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우리도 이제 모방연구를 탈피해야 한다는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창의적 연구사업이 진짜 노벨상의 씨앗이 되기 위해선 이같은 현장의 지적들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가 앞서야 할 것같다.

김창엽 정보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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